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홉 번째 서평

무소의 뿔처럼 우리 같이 가자!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산문집)




 책을 사다 놓고 꽤나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읽어야 했다. 그것은 어쩌면 선입관으로 무장을 해버린 내 인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섣부른 판단이 책 읽기에 방해를 했던 까닭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에 대한 선입관은 무엇이었을까. 또.. 어설픈 생각으로 일찌감치 불러일으킨 우매하기 짝이 없는 그놈의 섣부른 판단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이고, 허접하기 그지없는 생각들에서 비롯한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책 읽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나는 불평을 했었다. 작가는 너무 독자를 의식하고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고. 그 인의적인 글쓰기의 냄새가 나를 자꾸만 책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투덜대곤 했다. 그러나 글 읽기에도 고비가 있다는 말을 새삼 상기하는 순간이 지나자마자 곧 모든 질문들은 매듭도 묶이지 않고 슬슬 비껴가지 시작했다.




 허점투성이고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못한 채 늘 무언가 갈망하기에 정신이 없으면서, 한두 가지 씩 실수를 하고 되돌아 후회와 미련으로 긴 밤을 지새우는 많은 소중한 시간들. 그 순간순간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능한 모태에 자궁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태아의 모습처럼 잔뜩 구겨진 채 엎드려 있는 나 또는 당신 아니면 우리들의 모습과 그 내면을 작가 공지영은 넓은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괜찮을꺼야. 그게 뭐 어때서. 현재가 중요하니까. 엄마는 믿어.




 책은 딸 위녕에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전해지는 사소하나 깊이 있는 편지글을 소개하고 있다. 위녕은 실제로 작가의 사랑하는 딸인 동시에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오로지 작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엄마가 딸에게 하듯 책망의 잔소리를 접할 수 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사랑과 애정이 배어나는 진실하고 진솔한 삶의 충언을 온 마음으로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공지영의 삶에 대해 일절 운운하지 않더라도, 책을 접했던 이들이라면 자연스레 그녀 공지영이 그려내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순간들, 결코 가볍지 않은 회환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실제로 미끄럽고 시린 얼음판 위를 건너왔기에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이렇게 말이다.

저 쪽은 가지 마세요. 얼음이 다른 곳보다 더 살짝 얼어서 여기 당신이 서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위험해요. 얼음 위를 지날 때는 제자리에 서서 뒤돌아보지 마세요. 그런 일은 다 건너가서 해도 늦지 않아요. ...라는 식으로.




 삶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삶을 먼저 지나가는 이들에 대한 충고는 우리를 이따금 혼돈의 길에서 등불이 비추는 안전한 길로 이끌어주는 몫을 해주기도 한다. 처음 받았던 어색했던 분위기에서 봄 눈 녹듯이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등불의 따스한 온기처럼 작가 공지영이 풀어놓는 이야기에서 따뜻함이 스며든 배려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가볍지 않은 이름인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땅위에 모든 여성들과 그들에게서 피와 살을 나누어 받아, 서로 닮은 모습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메시지다.

      

 사랑, 우정,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가끔씩 이는 바람에조차 흔들리는 마음으로 맞게 되는 설레임이라는 감정에 대해.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녹아드는 삶의 모습에 대해 작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다독이는 일을 잊지 않은 채 천천히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다.




 “만일 불쾌한 기분이 되살아나고 얻는 것이라곤 없는 낡은 생각들을 되풀이 하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하라.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그만!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나가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통에, 고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내주지는 말자. .............. 오늘은 오늘만을 데리고 온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이러니해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이 없는 이는 떨어지는 순간에 인간이 느껴야만 하는 수많은 생각을 점 하나, 쉼표 하나라도 비슷하게 그려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왜 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나를 내동댕이쳐야지만 내게 깨달음이 오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언가 알게 되는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건 너무 과혹한 형벌이지 않을까.

 살면서 언제나 한결 같이 태연한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때로는 대범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살고 싶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무척 스트레스가 쌓이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생각으로 책읽기를 중단한 채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 내게 작가 공지영이 말하고 있었다.




  “직면하는 것, 회피하지 않는 것,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충분히 거기에 상응한 고통을 겪어 내는 것, 그래야 젊은 시절의 고난이 진정 값어치가 있게 되는거지.”




 이른 새벽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젊음이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한 길이고, 어둠속에서도 눈부신 햇살처럼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으로 그 의미를 온전히 다 하는 순간이기에 아름답지만 그 만큼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하지만 젊음의 시기를 반발자국 더 멀리 건너온 내게도 여전히 삶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다.




 모든 것에서 얽매이지 말고 가능하면 마음을 비우고 가라는 뜻으로 들어왔던 구절을 기억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작가 공지영의 쓴 소설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평을 마무리 하는 지금에서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그것이 정 힘들고 어렵다면 같이 가자!

내가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응원할 것이고, 너와 함께 있을 테니까.




ps. 아직 어린 사랑하는 내 딸 효린아. 네가 자라서 생각이 깊어지면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을 찾은 듯해서 엄마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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