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1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여섯 번째 서평

과거와 현재, 통하였느냐!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이현군 저)

 오래전 유명세를 탔던 한편의 영화가 생각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남녀상열지사라는 유교적 편견이 숨어있는 선례를 밉지 않은 해학과 통속으로 그려냈던 영화다.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영화를 기록했던 포스터의 한 카피 문구 때문이었다.

 통하였느냐! 대관절 갑자기 뭐가 통하였다는 뜻인가.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막힌 하수구가 뻥하고 뚫려 콸콸콸 시원스레 빠져나가는 물줄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통하다, 라는 뜻은 막힌 데가 없이 원활한 소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 정을 통하다, 는 식의 관용구로도 쓰이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다분히 후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러나 다른 수식어가 없이 통하였느냐! 라는 문장 하나는 어찌 보면 두 가지의 뜻을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그런 까닭에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고서도 관객은 나름대로 상상의 가방을 재미나게 꾸려나갈 수가 있다. 이런 뜻으로 가방을 꾸리든지, 저런 뜻으로 가방을 꾸리든지.. 그것은 관객의 몫이며 이는 흥미유발이라는 차원에서 성공적인 카피임에 분명하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의 서평을 준비하면서 부제목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시대적 배경에서 같은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조선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을 오버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대의 지리, 풍수 그리고 이와 연개해서 설명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그 바탕이 조선의 한양을 모태로 삼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현대의 것을 논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과거와 현대 두 시대가 남아있는 역사적 사료의 증거물로 소통하지 않고서는 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도, 이해하는 일도 어려워 보이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인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로 저자는 지도 읽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이보다 앞서 저자는 왜 하필이면 옛날 지도를 들고 서울 답사를 떠나야 하는가, 라는 독자의 질문에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진지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피려한다.

 ‘시간의 흐름, 역사로 장소를 볼 것이 아니라 장소를 통해 시간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역사를 재구성해볼 수 있습니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처럼 그가 스스로 발 딛는 순간순간, 그  자리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역사를 찾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딴은 그렇게 본다면 범위가 서울로 소개된 이 책을 벗어나서, 내가 딛고 서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땅 한 귀퉁이도 혹시 숨겨진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늦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오고가던 길도 어쩌면 깊은 역사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은 총 네 장의 큰 이야기로 나뉘는데, 사대문 안에 왕이 거처한 궁을 중심으로 주변을 둘러싸는 산과 지리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다. 복개공사로 오랜 시간동안 지하에서 음습하게 숨죽어 있던 청계천을 중심으로 물길 이야기를 꺼내고, 서울이란 지역이 성곽으로 이어진 곳이라는 내용의 도성답사 여정을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문 밖의 일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서 나오는 달변은 그 범위가 다양 할뿐 아니라 세세하며 다정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궁 이야기에서 경복궁을 둘러싼 북한산과 북악산, 도봉산과 남산의 지리적 입지조건과 당대의 정치권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무심코 지나가며 스쳐보기만 했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대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해주는데 한 몫을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왜 경복궁이 뒤로 북악과 북한산을 등지고 자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더불어 현대시대에 맞게 지리적 요인과 건물의 입지 조건 등을 비교 정리하는 내용은 바로 과거와 현대가 서로 ‘통하였기에 ’ 통하고 있기에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청계천이 복개 된지 오래지 않은 시점에서 저자의 답사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서나 접했을 청계천의 모습을 많은 다리의 설명과 더불어, 계천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다양한 면모를 작은 보폭으로 걸어가면서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노력은 고맙기까지 하다. 또한 3장의 도성답사 중에서 중국의 관우사당을 소개로 한 동묘의 동관이나, 임진왜란 후 명나라 군사를 위해 세웠다는 민충단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 있어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책은 뒷부분으로 읽어갈 수록 재미가 있는 글 읽기였다. 저자는 당대 권력층의 대표적인 건물이던 궁에서 벗어나 이를테면 소외되어 있는 부분들, 성 외곽의 일반 민초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생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 부분에 싣고 있다. 

 결국 조선의 왕이 거처했던 궁이나, 궁을 둘러싸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수로와 육로나, 성 외곽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역사적 지리적인 이야기 등은 모두 인간이라는 큰 맥락을 벗어나서 거론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기실 지도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결론을 혼자 조심스레 내려본다.

 

 끝으로 저자인 이현군은 ‘문화지리학’과 ‘역사지리학’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물론 이 두 관점은 이 책에 기본 바탕이 되는 개념일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두 가지 학문이긴 하지만 단순히 지리학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지리와 역사라는 거대한 주제를 조합해 하나로 완성해서 풀어나가는 저자의 건실한 노력이 돋보였던 책이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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