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허병식.김성연 지음, 홍상현 사진 / 터치아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특별한 네비게이션의 목소리를 듣는다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다섯 번째 서평)-




 나는 그다지 길눈이 밝지 못하다. 그래서 길에서 해매거나 잘못 들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지각을 한다거나 늦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쩌면 길눈이 밝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방향감각이 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리는 것이 어째 똑같은 말로 들리긴 한다. 하지만 무작정 어딘가를 목표로 해서 의도적인 방황을 하기도 했다. 모 대 학에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던 친척을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던 적이 있는데 내가 확인했던 것은 오로지 지하철 노선표였다. 지하철 계단의 높고 험준한 고개를 올라서서 오로지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되어, 물에 젖은 옷자락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무겁게 불어오는 낯선 바람,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느껴지는 어딘지 이상하게 묘한 느낌의 냄새와 무섭기까지 했던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걸어다녔던 때가 내게도 있었나보다.

 

 그날 나는 만나러 갔던 이를 만나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돌아와야 했다. 그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여정이었기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날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 내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어느 길로 온 거니?  어느 길로 오다니.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초행길이었던 내가 갔던 길 말고도 다른 길이 또 있단 말처럼 들려왔다. 시장을 질러서 오면 좀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는 내가 그저 무심하게 지하철에서 내려 도로변을 따라 와서 골목으로 접어들고 언덕길을 걸어서 왔다는 말에 지루했겠다, 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건 그 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누구누구에게나 맞는 말이지 초행길이었던 내게는 지루함 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날 내가 그렇게 헤매고 걸어 다녔던 길은 성북동 길이었다. 물론 이 책에도 그 성북동 길이 소개되어 있다.

기억이 새롭다.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이번 책은 서울 문화예술탐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지도책 같기도 하고, 문학의 짤막한 맛보기 안내책자 같기도 하고, 사진첩 같기도 한 이미지다. 서울 곳곳의 사진들이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으로 담겨 있으며, 여행안내 책자의 그것처럼 길 안내를 위한 아기자기하게 도식화된 지도가 더불어 소개된다. 두 명의 저자가 직접 걸어가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저술했기에 독자가 책을 읽는 동시에 그 길을 걸어가는 느낌을 받게 한다. ‘산책코스’에서는 거리와 걸리는 시간(도보기준) 그 외 교통정보와 별도로 중요한 정보가 기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박물관이나 문학관의 관람시간 내지는 문의를 안내해주기도 하는 수고로움도 곁들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친절해서 특별한 네비게이션, 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 애정이 가는 것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와 연계된 문학의 한줄기 옷자락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란다. 문학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어 보인다. 소설이나 시나 에세이나 다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친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은가. 누군가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에서 재미를 찾자고 눈을 부비고 안경을 고쳐 쓰며 고민을 한다면 함께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이 길과 연관되어 있는 문학적 작품은 뭐가 있을까?. 아니 혹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열두 곳의 지역과 함께 관련된 문학 작품 그리고 그 배경 이야기가 소개되는 책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명동, 남산, 남대문, 정동길, 광화문, 북촌길, 인사동, 홍지동, 대학로, 성북동, 사직동, 신촌이 등 많은 친숙한 이름들이 우리 곁을 찾아와 이야기를 건넨다.

 건조하고 무거운 문체가 아니어서 더 정감이 간다. 소개되는 문학작품 중에는 1900년대 초기에 쓰여진 작가의 작품도 있고, 가장 최근 출간된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고 다양해서 거대 문학의 일대기를 접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욕심이란 놈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이 책을 들고 소개되는 한 곳 한 곳 장소를 정해서 직접 가보고 싶어진 것이다. 이쯤에 와서 왼쪽 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파란색 간판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 어쩌면 내가 책에서 찾아내지 못한 또 다른 그 무언가를 찾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설렘이 생겨난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모습이 늙어가고, 그 마음은 두리뭉실, 세상과의 타협이란 것에 악수를 건넨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변해가는 것 중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도 있다.

‘공간은 변한다. 기억도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그때 그곳을 더듬은 활자만이 기록으로 남았다. 우리는 변하는 물질세계 속에서 무엇을 붙들고자 하는가.’




 책에 인용된 소설가 성석제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하는 성장통 같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이 숨 쉬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많은 시간의 흐름을 떠안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려 하는지, 마음을 열고 앉아 기다려 볼 여유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우리는 우리 각자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정겨운 이름으로 남아있는 어느 하나의 길과 그 길에 서 있던 자신과 다시 조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와 같이 있던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때 참으로 좋아하던 시인, 기형도의 시를 다시 볼 수 있었기에 반갑기도 하거니와 서울 곳곳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더불어 문학적 감수성을 선사해주는 고맙고 착한 책이다. 이 가을에 한번쯤 사심 없이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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