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누군가 끊임없이 내게 속삭여주었으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불안해하거나, 걱정스러운 일로 잠을 설치거나, 가슴 졸이며 눈물을 흘릴 어느 시점에 항상 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그 누군가가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서른 해를 넘기며 이제껏 사는 동안 나는 몇번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이지 내게 그 말을 해줄 누군가를 절실하게 기다렸던 적이 있었으며, 또 내가 내 안에 있는 자아에게 괜찮다, 괜찮다는 말로 위로하는 서정주 시인의 시를 생각하며 끊이없이 이야기를 하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위로받기를 원했고, 누군가의 가슴에 안겨 따뜻한 온기를 전달 받기를 원했으며, 그때 내가 처한 현실과 숨 막히게 힘들었던 환경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순간을 떠올려야 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다고 봐야 맞는 말일 것 같다. 그것은 상처일 수도, 딴은 작은 기쁨과 회환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이만큼 지나고 나서 봐라보면 그 모든 것들은 단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의 글은 마치 한때 내가 그렇게 바라던 그 누군가의 위로처럼 괜찮다, 괜찮다 하며 흔들리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껴안아주고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고인이 된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도 있고, 아이러니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의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있다는 지금의 현실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 그녀를 신문지상에서 처음 접했다. 한참 스크랩에 흥미를 느끼던 어느 때였던가. 신문 한쪽에 칼럼 비슷하게 그녀의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스크랩을 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어느 대학의 교수라고 했던 그녀의 글은 으레 직책에서 보아지는 딱딱하고 건조한 어투가 아닌, 마치 절친한 어느 선배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글로 그려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는 칼럼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이야기 했었다. 이야기 거리도 참 다양했었다. 학생들의 이야기 중 연애 이야기도 있었고, 학생과 교수가 주고받았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이야기도 가끔 실리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부러움 때문이었는지, 저렇게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었던 까닭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장영희 그녀의 제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곧 나는 그녀를 잊었다. 보다 많은 문제들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서서 나를 조롱하듯 항상 고민거리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무렵 나는 전공을 바꾸고 대학을 다시 들어가는 개인적인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전공이라 해봤자 별볼일없는 것이긴 하지만, 뜻한바 있어 가족의 반대를 뒤로하고 다소 이기적인 내가 되어야 했던 시절에 나는 장영희라는 한 사람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니다. 그냥 잊혀졌다고 봐야 사실일 듯싶다. 그동안 샘터 잡지를 통해 꾸준하게 독자와 만나왔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그랬구나. 그랬겠지.

사실 그녀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스크랩을 하던 시기가 아닌 몇 년 후에 알게 되었지만 십여 년이 훨씬 더 넘게 흘러가버린 지금에 와서 그 긴 시간동안 그녀가 투병생활을 해왔다는 글을 접했을 때는 텁텁해져 오는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하기사,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법이다. 사는 동안 병도 나고, 좌절도 하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뭔가를 깨닫게 되는 게 삶의 이치 아니겠는가. 나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다시 위로 받고 싶은 욕심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다시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어질 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 한 권의 책이 내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괜찮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라고




“세상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죽을 듯이 노력해도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오래전 내 따뜻한 추억 속 골목길 안에서 들은 말-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살아온 기적 살아갈 시절, 장영희 에세이 중 ‘괜찮아’ 일부-




그녀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나는 어쩌면 그녀가 책속에서 이야기했던 수많은 아줌마의 일원으로서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책은 정말 좋은 선물이에요. 가슴에서 어여쁜 꽃이 만발하게 피어날 것만 같아요. 가슴이 이만큼이나 시원해지는 느낌이네요. 잔잔한 물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요. 감상적인 글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브라보! 그게 바로 내가 사는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라고 했을 법도 하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에필로그의 이야기처럼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자신과 함께 주변의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속삭여주던 사람. 이번 에세이 역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사랑, 연민, 고뇌 아니 어쩌면 그저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

책을 덮으면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박박 지우고 새로운 그림 하나를 그리며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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