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남난희.정건 지음 / 마인드큐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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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린다. 어제는 2월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15도까지 낮기온이 올랐다고 했었다. 하늘은 여전한데 날씨가 심술인지. 속내를 감추고 있는 저 하늘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모르쇠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날씨가 하루 차이로 오락가락 변화무쌍하다.

아이들은 덥다고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데. 오늘 내일은 아마 다시 두꺼운 옷을 찾지 않은까 싶다.


오늘의 기록을 남기기 전에 기분이 매우 달떠있다는 말을 먼저 시작하려 한다. 달뜨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여전히 조금 흥분되어 있나보다. 이런 내 기분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오롯하게 다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책을 보는 틈틈이 등산화를 검색했었다는 것도 소곤거림의 낮은 소리로 슬쩍 흘려본다.


이번 책의 제목은 책이 담아내는 그 내용처럼 웅장하다.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Pacific Crest Trail)를 걷다’ 이다. 4285km라니 사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 대략 400km 안팎이다. 서울과 부산사이의 거리의 10배 정도 길인가도 싶다. 참... 긴 길이다.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남난희와 정건이 그들이다. 사실 왜 저자를 한명이 아닌 두 명으로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져갔다면 이해가 될까. 시작은 언제나 남난희가 먼저였다. 그리고 뒤를 건의 이야기가 그 뒤를 따른다.

어쩐지 길을 인도하듯 남난희의 이야기와 그 길을 함께 했던 정 건의 이야기가 묘하게 조화롭게 다가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거침없이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남난희의 성향과, 뒤에서 묵묵하게 정리하며 받쳐주는 일을 성실히 해온 정 건의 우직함이랄까. 두 사람의 글 속에서 그들 한명 한명의 고뇌와 성찰이, 또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발휘되는 어우러짐과 성실함이 진득하게 배어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PCT (Pacific Crest Trail)을 준비해서 떠났고 그 때의 감흥과 경험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섯이 출발했고 그 다음에는 상황에 따라 두 명. 또 세 명 등등 함께 하는 구성원들은 조금씩 달라져갔지만, 대자연의 조화로움을 몸소 느끼며 조금씩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있어 그 의지는 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적어두고 싶다.

책은 2018년 오리건을 시작해서 2019년 캘리포니아 남부. 그리고 코로나 19로 한해 쉬어 다시 2021년 캘리포니아 중부와 2022년 마지막 워싱턴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기록이다.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에는 한두달 사이를 걷는 하이킹을 섹션 하이킹이라고 하고, 그 보다 더 긴 시간 즉 5-6개월을 걷는 것을 스루 하이킹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남난희와 정 건 이외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섹션 하이킹으로 참여한다고 보면 좋겠다. 이들의 여정에는 사막도 있고, 눈길도 있고, 추위와 더위 그리고 모기떼와 울창한 수풀도 있으며 산불로 막힌 길도 있었고 무서운 곰도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는 애칭인 ‘엔젤’과 ‘트레일 매직’을 포함. 그들의 조건 없는 베풂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등이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어쩌면 길고 지친 하이커들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인 동시에 각박한 현대 사회에 이런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비단 하이커가 아니더라도 어쩐지 천천히 행복해지는 순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책 속에서 남난희가 언급했던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토로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그녀가 책 중간중간 언급하고 있었던 백두대간과 PCT를 비교한 대목에 공감을 표한다.


산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하이커'라는 문화에 대해서도 처음 접해보는가 보다. 그저 아무런 욕심 없이 자신과의 싸움, 혹은 자신과의 여정. 그리고 곁을 따르는 이들과의 동지애를 지켜내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걸어가는 이들이 대단해보였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건강함과 강인함에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는 순간이었던가 보다. 비슷한 연령대에 누군가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준비를 하고, 누군가는 백두대간을 생각하고, 또 PCT나 JMT(John Muir Trail)를 도전할 것을 준비하는데 나는 너무 안일한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때로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을 다시 그려보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그렇다는 말이다. 수다스럽지 않고 진지하고 속내를 들추어내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그 누군가가 있다면 하이커가 아니어도 그저 잠시 얼굴만 들여다보아도 좋을 그런 지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념 하나가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지극한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읽어볼 수 있어서 더 감사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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