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김종해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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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관조적(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것.-네이버 출처)이라는 말을 떠올렸던가보다. 시를 쓰고 읽고 생각하기에 관조적이라는 어휘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하나 작게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일. 천천히 생각하는 일의 모든 순간들 말이다.

 


조금 전 천둥이 치고 급작스럽게도 비가 쏟아졌다. 봄 날씨가 이렇게 요란했던가. 일 년에 한번 다녀가시는 정수기 관리사님이 내게 말했다. 책만 보시나봐요. 적어도 육 년은 더 되었을 만남이다. 그녀의 손녀딸이 여섯 살이라는 말에 어색한 놀라움이 번져들었다. 이런 상황, 이런 순간과 이런 생각과 이런 찰나들조차도 모두 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 시인의 가슴으로,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김종해 시인의 시집[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을 읽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그에게서 나는 어떤 시심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 무언가를 찾고 싶었고 읽고 싶었는데, 과연 내가 찾았던 것이 이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전에 시인의 에세이를 먼저 접했던 까닭에 그가 낯설지만은 않다. 그의 시에서 등장하는 시인들도 예전보다 더 친근해졌다. 박목월, 박남수, 김종한과 이용악, 이어령. 시집 말미에 해설을 쓴 방민호 교수까지.

시인의 시는 간결함 가운데 의미가 깊고, 방민호 교수의 해설은 그 내용이 시집의 올릴 해설치고는 내용이 방대하면서 두텁다. 마치 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학생시절에는 시도 좋아했지만, 말미에 실린 해설을 더 집중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었을까.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함 속으로 들어가기에 너무 무디어진 까닭이겠지


 

그런데 김종해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온전하게 따뜻해보인다. 치열함과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보았다기보다는, 일상의 기록을 시로 잔잔하게 옮겨놓았다는 인상을 더 많이 받게 되는 시집인가 싶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 시로 태어나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에서 아내와 살면서 내려다보이는 모습들을 시에 담아내고 있으며, 증손녀의 탄생과 돌에 대한 기록. 함께 했으나 먼저 떠나버린 문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모습으로 다가서는 회한들이 가득하다. 시집은 지나온 삶과 맞이할 죽음을 두고 의연하게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반추하며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인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시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상황에는 나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듯도 하다. 만약 이십 대 시절 젊은 나이인 내가 이번 시집을 읽는다면, 나는 또 지금과는 다른 느낌과 소회를 갖지 않았을까. 시를 쓰는 시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다 원숙한 시를 쓰게 되는 까닭은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욕심 같아서는 제목이 들어간 시를 인용문으로 채택하고 싶지만, 그 옆에 실린 작품을 골라보는 중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심이다.


 

-절망도 약이 된다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그대여, 오늘의 캄캄한 시간이

괴롭다고 자책하지 마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기만 했던 시간이

사람 살아가는 날의 일생에서 보면

바람 스치는 한순간일 뿐이다

뜨거운 불가마를 거쳐나온 도자기가

온전한 제모습을 갖추듯

그대에겐 새로운 내일이 있다

수천억 년 묵묵한 바위로 살기보다

짧은 시공(時空) 안에서

짜릿하게

슬프고 기쁜 마음 주리고 가는

인생 앞에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절망도 약이 된다전문 인용 p15 -


 

마지막으로 시인 김종해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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