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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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삼일동안 내내 율리아 레즈네바의 Tu del ciel ministro eletto의 음악만 듣는다. 중독이다. 경건함으로 정신을 무장한다. 이른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어둠이 더디게 물러가는 것처럼 아침도 느릿한 걸음걸이로 찾아오는 하루였을까. 일곱 시가 지나도 어두웠다. 침대 머리맡에 독서 등을 켜고 고이케 마리코의 책을 본다. 옥색의 책 겉표지를 벗겨보니 좋아하는 쪽빛, 아니 더 진한 남색의 면지에 금색으로 박힌 글자가 또렷하다. 그런데 책의 한 귀퉁이가 구겨졌다. 욕심같아서는 양장표지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다.

 


짝을 잃은 그녀의 이야기가 차분하다.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흔들림 앞에서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수면 같다. 이러한 시간이 오기까지 그녀는 홀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냈을까.

이야기는 추억처럼 흘러간다. 함께 했던 매 순간의 모습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듯하다. 동거를 하고 함께 글을 썼던 시절들. 작가로서의 동질감, 배우자로서의 현실적인 교감들이 그녀의 추억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부부는 함께하는 동안 친구였으며, 세상에 오직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서로의 신실한 내 편이었으며, 든든한 아군이었던가 보다. 일흔이 넘은 그녀가 우리에게 풀어내는 잔잔한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이 떠나간 빈 자리는 하냥 쓸쓸하다. 어느 이른 아침 봄이 찾아오고 계절의 순환이 멈추지 않아 다시 겨울이 다가오도록, 겨울털로 털갈이를 하는 여우나 너구리 부부, 원숭이 가족 혹은 라임 빛깔로 물들어가는 은행잎을 보는 순간마저도, 그녀는 남편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그리워한다. 그의 빈자리에 조용히 찾아들어 온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어도 그녀의 마음 한편은 늘 조용히 쓰라리다. 그러나 작가 마리코는 그 모든 상처를 침묵하며 끌어안는다.

그런 까닭에 한글자 한글자 마음으로 꼭꼭 눌러 써내려갔을 그녀의 이야기가 마치 차가운 눈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침묵의 무게라는 게 이런 것일까.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녀의 생각 모든 중심에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움과 그리움이 늘 자리한다. 이제 그가 떠난지 일년이 지났다고 하던 그녀의 이야기조차 너무나 덤덤하기만 하다. 문득 생각해보면 여느 사람들처럼 상실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의 요란함으로 마주하기에는, 그녀가 견뎌내고 가슴으로 품어낸 시절의 침묵이 너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상실에 대한 준비? 이별에 대한 마음 준비 같은 거라고 할까. 연로하신 부모님, 남편 혹은 나?(우리는 서로 골골하니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은 늘 익숙하다) 언젠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 상황과 마주하게 될 때 대책도 없이 무너져버리는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세월은 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고도 하는데. 그 순간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 두려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게 남편은 걱정 마, 당신은 가늘고 길게 살거야, 그리고 내가 먼저 가면 그 다음날 바로 따라와라는 말로 농을 던진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모를 끄적였었다. 애써 지우려고 하지도 말고, 또 지워질까 고민하지도 말고, 그저 남아있는 그리움 그대도 마음에 담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방법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사실 자신이 없다는 말로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출렁거리는 물결을 다 떠나보내고, 고요한 수면처럼 받아낼 수 있는 성숙함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주변에 흙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새가 있는 곳에 가서 살면 좋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상실감을 다 채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의지하며 살아갈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마리코에게 정원과 집과 고양이, 그리고 친절한 지인들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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