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저문 자리 모란이 시작되면 -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김소월과 김영랑의 아름다운 시 100편
김소월.김영랑 지음, 최세라 엮음 / 창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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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저문 자리 모란이 시작되면

 


김소월과 김영랑의 시 모음이다. 시인 최세라가 각각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그녀만의 생각을 보태는 형식이다. 그녀의 작업으로 소월과 영랑의 시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반가운가보다. 공평하기도 하지. 소월의 시 50편 그리고 영랑의 시 50편을 똑같이 실었다. 그리하여 제목부터 소월의 진달래꽃과 영랑의 모란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그들의 이야기에 심취했었을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흔히 익숙한 것들에 더 친근함을 갖는다. 문학()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삶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중고등 시절에 교과서에서 봤던 시들이 종종 보인다. 이리 다시 보니 반갑다. 그런데 어쩐지 그 옛날 정해진 그 이미지가 그대로 굳어져 지금도 똑같은 시선으로 소월과 영랑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빠진 나를 발견한다. 불쑥 자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일종의 선입관일까. 이미 굳어버린 이미지란 것이 이런 것일까. 금모래 강변을 노래하고, 떠나가는 님에게 진달래꽃을 뿌려드리겠다는 소월의 시가, 여성스러움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영랑의 시들은 어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랑의 작품들은 아는 작품이 거의 없다. 그저 뭐랄까, 방울방울 똑또르르르르. 무언가 매끈하게 굴러가는 듯한 이미지들. 영랑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이미지는 밝고 맑은 햇살 한 줌. 혹은 이슬방울 같은 이미지들이었을까.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는 작품들까지 소개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기존에 배워왔던, 고착된 두 시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차분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연에 대한 예찬, 신실한 사랑, 내면으로의 침잠, 존재의 고독감, 그리고 삶과 죽음, 이별, 식민지 치하에서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소월의 연인이었던 오순. 소월이 시에서 승화하기를 원했던 사랑의 이미지들은 거의 오순과 그 길이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참 좋아하던 초혼이란 시가, 그 여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최세라의 설명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등진 부인을 찾아 무덤가에 앉아 상념에 젖는 영랑의 모습도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매 단풍 들겄네가늘게 흔들리는 소리가. 바로 영랑의 누이의 수줍은 듯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것은 내가 너무 심취한 까닭인가. 세상만사 드세고 호되게 혼잡하여도 한순간 마음만은 다 내려놓고 높디 높게 올라설 수도 있구나 싶다.

그러니 두 시인의 이야기처럼 절망 대신 희망을, 고락을 넘어서는 그렇게 누구나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말을 지금 이렇게 멎쩍게 하고 싶은가보다. 괜시리. 내가 뭐라고.


 

시를 읽을 때마다 소월과 영랑 이들의 유년이, 젊은 날이, 사랑이, 화사하게 빛나야 했을 아쉬웠던 청춘의 장면들이 연이어 지나가는 듯하다. 만개하지 못한 채 지고 말았을 그런 순간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두 시인의 시를 품은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쓰라리다.

 


이제는 사설이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소월. 그의 스승 김억 역시 정주가 고향이었다고 하는데, 내게 유독 친근한 시인 백석 또한 이들의 후배였더라. 참 묘한 인연이다. 정주 땅에는 무슨 알 수 없는 신의 정기가 흘러내렸을지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고르는데 더 신중했었을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밝은 울림과 깊이감을 담아내는 작품을 골라본다. 영랑의 작품 마당 앞 맑은 새암을의 전문을 옮긴다.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어다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 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


 

-김영랑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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