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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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하루 이틀 사이 겨울의 대찬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니(겨울)도 힘이 들어 잠시 쉬어가는가. 삼한사온이라고 했던 말도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기후 변화 때문이겠지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니가 쉬고 있는 덕분에, 먼저 내린 눈이 서걱서걱 부석부석 소리를 내며 녹아들 것만 같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누군가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책이다. 경북 의성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다시 추억하며 글을 썼다.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빛깔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지개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에는 꽃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추억들이 함께 펼쳐진다. 그녀가 기억하는 꽃과 나무에 보태어진 추억들은, 곱고 아름다우며 딴은 부드러우면서 애잔하다. 마치 아롱지게 빛나는 무지개 같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화려하진 않아도 나름 아름다웠던 시절들 말이다.


 

처음을 생각하면 나는 그저 단순하게 꽃과 나무가 등장하는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저자의 유년 시절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자연과의 교감들이 저자의 추억 속에 한 아름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등장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저자의 시선이 마주했던 풀꽃과 나무와 자연이 선물해준 것들과 순박하게 잘 어우러져 자리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멀리 고향을 두고 온 이들에게는 고향을 생각하고 유년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나처럼 서울이 고향인 이들에게조차 막연하게 꿈꾸는 또 다른 고향의 이미지를 선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소개하는 꽃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꽃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느릅나무와 느티나무는 아무리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사진을 들여다봐도 차이를 잘 모르겠다. 되려 경북 영주가 고향인 남편이 더 잘 알 것 같은 이름들이 아닌가.

나는 꽃을 잘 모른다. 아니 아는 꽃이 별로 없다. 많이 알려진 뻔한 이름과 의미의 꽃들 말고 토종 꽃이라든지, 시골 맑은 곳에서 자라는 꽃들의 존재는 내겐 너무 멀리 있는 대상이다. 마가목이라든지, 박주가리꽃이라든지, 쥐똥꽃이라든지, 타래붓꽃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꽃들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궁금해졌다고 해야할까. 책 속에 꽃과 나무의 실제 사진이 없는 게 아쉬웠다. 아주 가끔 그림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일일이 사진을 찾아보다가 지쳤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보람 있는 수고로움이 아니었던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꽃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노루귀꽃이다. 노루귀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란다. 가만 있자. 내가 이리 화려한 꽃을 좋아했던가? 화려한 듯 수려하고 단아한 듯하나 새촘한 느낌의 꽃이다. 꽃도 꽃 나름이라 생김새가 여느 꽃과는 달리 보였던 것이 시선을 끌었던가보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하더니 이젠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다. 꽃도, 나무도, 바람도, 하늘도, 구름도 예전하고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달라지고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 생각.....

어제는 지역 관광지 근처 어느 처마 밑에 매달린 긴 고드름을 발견하고 남편이 뚝 떼어다 건네주는 바람에 아이처럼 고드름을 들고 다녔다. 내가 지나온 유년의 편린에서는 깨끗한 고드름이 없었던가 보다. 손이 시려웠다. 버리려고 가지고 다녔던 마스크 봉지로 잘 싸서 고이 들고 다녔는데, 옆에서 직접 따준 이가 어린애 같다고 장난을 걸었다.

뭐랄까. 나는 고드름을 따준 이의 마음과 옛 추억을 존중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매달린 고드름이 더 좋았지만, 내게로 향하는 그 마음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기꺼이 함께 좋아하면 될 일이다.

 


몹시 춥고, 폭설이 내리고, 마음이 울적한 일들이 연이어 있었지만, 숲하루(필명도 곱다)의 책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을 통해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무심한 듯하지만 나는 결코 무연할 수는 없는 존재다. 그래도 도꼬마리(도깨비바늘)처럼 어딘가에 상처는 주지 않으며 살아가련다. 욕심은 그렇다. 인생은 참 힘겨운 무엇인데 다짐은 이리 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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