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우리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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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한동안 문학과 인문학 장르의 책만 읽어보다가 갑자기 집어 든 정치 관련 책이다. 심경의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눈이 올 것 같이 하늘이 흐리다. 아마도 멀리 우리 땅 어느 지역에는 눈발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지 않을까.

이번 책은 반지성주의와 관련한 강준만의 책이다. 그의 이름을 두어 번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정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관심이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렇다는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냥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 말 그대로 폭삭 안기어 사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반지성주의도 처음 접해본다. 어쩐지 단어만 봐서는 지성주의에 반하는 그 무엇?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지성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뒤를 잇는 내용들은 사실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

잠시 서두에 나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가 책을 쓰고자 했던 속내를 알 수 있다.

 


-이 글은 대중이라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 거시적인 배경을 밝히는 동시에 개인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미시적인 설득 커퓨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소통에 기여하고자 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p24

 


책에는 어용(이 표현은 그래도 좀 들어봤다)이라든지, 합의 사학파, 프로파간다 와 같은 낯선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가 정리한 내용에서 등장하는 표현들 예로 들면 행동 편향이라든지 가용성 편향과 같은 표현들은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읽으면서 이해가능한 부분이기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종 네이버 사전의 힘을 빌려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연필을 들고 공부하듯 읽었고, 나중에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을 즐기며?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필을 들고 끄적이며 읽었을 때나 괜히 의도된 게으름을 피우며 읽었을 때나 다 같이 들었던 생각은 답답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정말 뭐가 그리 답답했던 것일까.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현재 정치인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누구누구의 이름들은 아주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놓고 이들의 이름과 이들의 행적?과 이들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정돈된 느낌으로 풀려나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쏟아져 나온다,라고 쓸까 하다가 표현을 바꾼다.

 


반지성주의와 관련한 그의 이야기는 네게 있어서 꽤 복잡하고도 난해하게 다가왔다. 그는 반지성주의가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를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반지성주의가 어떤 모양새로 확장되어가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또 그 영향력과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논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말하는 반지성주의와 관련해 ‘5개의 인지적 편향에 대한 대목에 유난히 더 몰입했음을 기억한다.

행동 편향. 가용성 편향. 확증편향. 부정성 편향. 이야기 편향으로 구분하여 풀어가는 그의 주장과 논리는 반지성주의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을 보여주는 듯했다,라고 쓰고 싶다.

한편으로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이러한 관점들에 대한 그의 우려와 염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선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서든 의견의 대립과 충돌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어쩌면 우리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가 신념처럼 생각하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인가 보다. 지금까지 그것이 현실인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다시 각인되어 생각해보니 씁쓸하고 답답해진다.


 

어쩌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라는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배척과 타도를 외쳐야 하는 인식에 빠져버렸을까. 어쩌다 우리는 타협이라는 것을 유치함의 극치라 생각하고, 중용이라는 것쯤은 다시 가용할 수 없어 폐기해야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에 빠졌을까. 어쩌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무서워졌을까.

 


강준만의 책 반지성주의는 사실 현대 사회가 지니는, 암울하고 냉랭한 의문들에 대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외면하고 부정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인지하고 수용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것. 스스로가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닫힌 광장에서 벗어나 열린 광장으로 향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방안이 아닐까,라는 소심한 생각을 해본다.

 


능력이 부족해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해 강준만의 마지막 이야기를 직접 옮긴다.


 

-편 가르기가 아무리 유치하고 치졸해도 사람들이 그것에 빠져드는 것은 그런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을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대중이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지만, 그 매료의 정체는 아리송하다. 강요당하는 것과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지지해주는 패거리 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긴 어려운 법이다. 아니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어느 편에건 속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미쳐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반지성주의를 비난해야 한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묻지 마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다-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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