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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만나자
신소윤.유홍준.황주리 지음 / 덕주 / 2022년 11월
평점 :
인사동에서 만나자
이틀 전에 눈이 내렸다. 그렇다고해서 하늘에 계신 어느 분의 후한 인심은 아니었다. 그냥 단지 ‘이제 겨울이 왔다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라’라는 짧은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그로 인해 남한산성에 있는 구멍가게? 는 못 가게 되었다. 운전하기 귀찮아하는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옛날 빵 맛을 그리워하는 내게는 아쉬운 날이었나보다.
아쉬움. 아쉬움이라 적고 그 안에 그리움을 더한다는 표현을 생각한다. 책은 인사동에 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듬뿍 고인 이야기들이 실렸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인사동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대들이 기억하는, 그렇게 또 기억하고 싶은 인사동의 모습은 어떤 색채의 것이었는지.
책은 인사동에 관련한 저마다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중에는 치과 원장 혹은 구청장의 자리나 화랑 대표의 자리에 서 있었던 이들도 있지만,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좋겠다. 시인, 화가, 수필가, 민화 작가, 연극배우, 섬유공예가 등등 다양한 자리에서 그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기억을 소중하게 소환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순간들, 기억하는 공간들은 서로 달랐으나 어찌보면 또 같기도 했다. 비록 그들 모두가 한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각자가 기억하는 시간에 뜨겁게 기꺼이 그곳에 함께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함께 뜨거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천상병 시인과 관련한 일화들과 귀천. 아마도 귀천은 그 시절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해왔던 모양이다.
이들이 공감하는 인사동의 옛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그 인사동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일까. 내가 느꼈던 아쉬움의 얼룩들을 책 속에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서도 언뜻언뜻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씁쓸함을 가져오는 순간이다.
언제부터인지 인사동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 십 년은 족히 넘은 듯한데. 마지막에 받았던 인상은 낯선 분주함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 기억 속에 자리하는 인사동의 첫 시작은 중학교 1년에 ‘가람’이라는 호를 쓰시는 멋진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사동에 가면 제대로 된 화선지와 붓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말로 어린 여학생들 가슴에 바람을 불어놓으신 그 잘생긴? 선생님 덕분에, 인사동에 가면 제일 먼저 화선지를 파는 곳부터 눈에 들어오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인사동의 멋을 알게 된 시기는 대학시절이었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귀천이라는 카페는 처음에 한곳이었는데 어느 해였는지 2곳으로 확장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 기억에 귀천은 사람들로 늘 북적였고, 조금 어두웠던 것 같기도 했다. 더 자주 찾아갔을 법하지만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더 작은 규모의 조금 더 조명이 밝은 곳을 선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둠이 내린 인사동 뒷골목 어느 음식점 다락방에서 처음 보는 한치회를 사주시던 교수님 생각이 먼 시간을 뚫고 불쑥 달려든다. 어쩌면 내 기억과 추억조차도 과거의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 인사동에 있었던 이들과 함께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허물어가는 담벼락에 붙어있던 너저분한 광고전단조차 가로등 불빛에 멋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보이던 그 시절, 내가 간직해왔던 인사동의 민낯은 얼마나 따뜻하고 소박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번화함과 화려함으로 지워진 인사동만의 순박한 가치가 아닐까.
큰길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세련된 건물 보다는 구석구석 좁은 골목길 사이에 숨어있는 귀한 공간을 찾아가는 일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함께 실린 많은 사진들을 참고해서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가도 즐거운 일이겠다. 음식점, 화랑, 공방, 카페 등등 소소하지만 귀한 안내 자료들이 함께 실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 이야기다. 각자의 추억 속에서 인사동을 그리워하는 이들, 혹은 새로운 인사동을 만나보길 원하는 이들 모두에게 잠깐이라고 좋은 시간을 할애해줄 만한 책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