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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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다. 책날개에 그의 흑백 사진이 실렸다. 기분 탓일까. 살짝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 듯한 그의 표정에서 뭔지 모를 우수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소개하는 글에서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소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인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쩐지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하다. 리얼리즘과 의식의 흐름? 기법이 갖는 관계가 과연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은 리얼리즘과 의식의 흐름의 어떤 조화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야 했던 질문은 바로 제목의 상징성이었다. 왜 작가는 제목을 나사의 회전이라고 했던 것일까.

 


출판사 미래와 사람에서 새로운 기획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난해한 해석에서 벗어나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려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같은 작품의 기존 번역물을 만나보지 못한 까닭에 차이점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한계이긴 한데, 사실 이번 책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그다지 난해하다는 인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말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이 빠졌다는 점이다.

작품 해설은 관점에 따라 장단점을 지닌다. 그러나 작품 나사의 회전이 지니는 상징성 혹은 열린 결말? 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해설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이 또한 지나친 욕심인가?


 

이쯤에서 작품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왜 사람들은 공포 이야기를 즐기는 걸까.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때때로 그런 부류들이 자아내는 공포심에서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간 한계의 한 자락을 엿보는 듯한 이런 분위기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만연한 듯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 소설 역시 비슷하게 시작된다. 무리의 남녀가 있었고, 이들은 서로 공포 이야기를 하며 흥분과 소란함을 즐긴다. 누구 이야기가 더 무서운가. 마치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승자, 라는 놀이를 즐기는 듯하다.

 


그리고 여기에 회심의 일격을 가할 것 같은 사람 더글라스가 등장한다. 그는 비밀스럽게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골 목사의 딸이었던 어느 가정교사의 경험담으로, 그녀가 본 유령과 이들 불온한 존재들과 교감하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인물들의 심리묘사라고 생각한다. 시점이 가정교사의 일인칭 시점으로 변형되어 진행되는데, 자신의 심리와 주변인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면의 깊이 있는 불안감과 의구심에 대한 묘사들은 작품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있어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이 이번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명명하게 된 까닭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령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하물며 유령과 대면해야 하는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고 할 때, 이를 접하게 되는 우리의 상상력은 또 얼마나 암울해지게 될까.

소설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인 가정교사의 심리변화는 다소 기복이 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불온한 존재와의 경쟁 혹은 정신적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로 인해 때때로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대조적으로 묘하게 강해지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발견한다는 점이다.

 


유령과 아이들, 그리고 여선생과 그녀의 조력자인 그로스 부인의 이야기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건 내가 처음으로 내보는 퀴즈다. 이 유령 출몰 이야기의 끝은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까?

열린 결말이라고도 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번 결말은 다소 허무함을 남기는 듯하다. 무언가 생동감이 담긴 열린 결말은 아닌 듯싶다. 아니, 아니다.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가 내릴 몫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되는 문장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내가 하려는 가혹한 일이 평범하거나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아이를 압박하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도덕성을 한 번 더 조이는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p194


 

[그렇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아이가 우수한 지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움을 마다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을 구제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영리한 사고력을 타고 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는 낚싯대를 드리우듯 그의 인성에 팔을 뻗어 그의 마음에 도달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p195

 


어쩌면, 인용한 문구에서 제목의 상징성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니 부끄러움 뒤로 보내야 할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사설이다. 밤에 책을 읽을 때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그동안 봐왔던 공포영화, 유령 관련 영화들이 줄줄이 기억 속에서 떠오르기도 했었다. 백주에 등장하는 유령이라니. 환한 낮에 등장하는 유령조차도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걸 두고 밀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유령과의 밀고 당김?

각설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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