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책장파먹기 9-9]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으려 했고 사실 또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었다왜 그래야만 했을까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냥 혼자 가지고 있었던 근거 없는 잡념이 그 발단이었고뒤를 이어 작동했던 고집과 아집이 뒤를 따라 생겨났던 까닭에서였다.

뭔가 색다른 글을 읽고 싶었던 욕심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하다히가시노 게이고의 글 중에서 뭔가 기존에 써왔던 것과는 다른 글들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이런 욕심은 개인의 욕망에서부터 나온 사심이겠지만따지고 보면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그의 글 중에서는 이따금 정말이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중무장해 내 편으로 와락 달려드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소설이 몇몇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했던 작품이라는 소개가 있었다동시 출간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작품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첩보 영화를 찍듯 비밀리에 원고 텍스트를 받아 번역 작업을 했다는 역자 양윤옥의 후기도 시선을 끈다어쩐지 묘하다이 또한 작가의 의도였을까번역을 거치는 그 과정마저 작품의 이미지에 맞게 비밀스럽고 신비로워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가벼운 상념이 떠오른다.


 

주인공 레이토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복 자매의 관계에 있던 치후네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출신에 대한 비애와 자신의 삶에 모습에 품었던 자격지과 어떤 단단한 의지 없이 살아가던 레이토에게어느날 갑자기 치후네라는 나이든 여성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주는 스토리가 표면적인 이야기이다그리고 레이토가 치후네의 제안으로 야나기사와 가에 전해오는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게 되면서작가는 한 집안이 오래도록 지켜낸 거대한 녹나무의 전설을 독자에게 서서히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한 나무를 연상했던 것 같다양평 용문사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나무가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 하나뿐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천년을 살아낸 은행나무를 생각하다 소설 속 녹나무를 그려보며 동시에 생각하기를 정말 소설에 등장하는 녹나무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실은 길고 긴 세월을 살아낸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면 이상하게 보이려나 싶기도 하다.

웅장한 모습과 흐드러지게 핀 노란 은행잎의 멋진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직접 가보면 은행나무 주변에도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 쪽지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생각해보면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고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딘들 다르지 않은가보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결국 감동으로 독자에게 여운을 나누어준다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까닭을 생각한다그것은 어쩌면 비밀을 간직한 녹나무 이야기 전개 안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인정하고느끼고깨달으며그렇게 감동이라는 어휘를 언급하게 되는 공통분모가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환상과 현실의 조화로움이란 결국 인간애로 귀결된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시내에 작은 서점에서 아들이 사달라고 졸라서 샀던 책이었다그런 까닭에 아들이 먼저 읽고 한참 후에엄마가 읽은 책이다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 책은 여느 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다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애는 다시 한번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담고 있는 메시지는 자못 심오하나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있어 난해함 없이 잘 읽힌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함께 청소년들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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