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지음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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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

 


김종해 시인의 산문집이다. 시와 함께 해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듯한 산문책인가 싶다. 일찍 타계한 아버지.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동생 김종철 시인. 시인의 첫사랑과 문학청년 시절의 이야기. 많은 문인들과 함께 해왔던 추억들이 담겼다.

 


오랜 시간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듣는 사람들을 어떤 겸허의 감정으로 빠르게 옮겨놓는 듯하다. 정치인이든 작가든 예술가든. 하물며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가 됐든간에, 그 지난한 삶을 견디어냈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그만큼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의 이름들이 호명되는 것을 본다. 참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요즘 세대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들은 유난히 무리를 지어 함께 결속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란. 시인이란. 외롭고 힘겨운 직업이다. 그러니 서로 곁이 되어주고, 격려하며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박한 세상에서, 치열한 문학 마당에서, 마음에 맞는 지기 한 명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날로그적 향수가 가득 배어나는 책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가 아니었던지라, 궁금하면 얼굴을 직접 만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글이 궁금하면 인터넷이 아닌 출간된 책을 들고 그를 찾아가던 그런 시절들의 이야기가 정감있게 다가온다.

 


시인은 1963년 자유문학에서 신인문학상을 시작으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 등단하게 된다. 이때 심사위원으로는 박목월과 조지훈 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한다. 책에는 그에게 등단의 기쁨을 안겨준 시 [내란]이 함께 실렸다. 그 이후 시인은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고은 시인과 이어령 선생을 만났다는 에피소드도 보인다.

한편으로 시인은 책에서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 한국 시단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가 언급한 파벌주의가 그 대목이다.

 


파벌주의와 편식주의, 시류와 인기에 영합하는 상업주의로 인해 위축된 우리 문학의 다양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지난 시절 한국문학이 보여온 폐쇄적 병폐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p161

 


이들의 유난한 결속문화가 파벌주의와 폐쇄된 분위기의 원인이 되었는가도 싶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어느 시인은 이러한 문단의 분위기가 싫어, 문단에서 떠났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으니 가벼이 넘어갈 만한 부분은 분명 아니었던가싶다. 헌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시인의 추억 보따리를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개인의 보따리 매듭도 같이 풀려가는 걸 느끼곤 했다. 학교에 다닐 때 한두 번 그들 시인들의 모임에 삐죽하니 슬쩍 구경갔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들은 하나같이 떠들기 좋아했고, 잘 웃었으며, 서로의 술잔에 얼굴을 묻는 것을 즐겨했었다. 하늘 같은 작가들. 시인들과 조무래기 학생들의 대면식이었다. 어쩌면 그건 김종해 시인이 풀어내는 추억의 한 소절처럼 그 무리에 자연스레 흡수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무심하게 잘도 흘렀다. 그래서 다행이다. 거룩한 시인은 시인의 마을에서 시를 쓰고, 우리네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영원히 예리한 독자로서의 직분을 다하면 된다.

시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쓰는 게 아니어서, 시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시로 형상화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 까닭에 시인 김종해도 여유롭다.

어느 해 어느 순간쯤이 지나갔을 무렵에, 그의 시를 다시 접해볼 수 있기를 기다린다.

 


책 속에 함께 실린 짧은 시 한 편을 여기에 옮긴다.


 

봄은 화안하다

봄이 와서 화안한 까닭을 나는 알고 있다

하느님이 하늘에다 전기 스위치를 꽂기 때문이다

30촉 밝기의 전구보다 더 밝은 꽃들이

이 세상에 일시에 피는 것을 보면

, 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다

봄은 눈부시고 화안하다

사람과 세상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긴긴 겨울밤은

하느님이 아직 스위치를 꽂지 않으셔서

어둡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봄은 와서

내 눈을 부시게 한다

 


-느닷없이 봄은 와서-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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