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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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이다. 책은 미궁(迷宮)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지러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혼란스러움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건가.

책은 어쩐지 소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도입부분을 연상시킨다. 그러면서도 어떤 까닭인지 같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거림감이라고 해야할까. 거리감은 객관적인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인 나는 묘하게 객관적 거리를 두면서도 사건에 개입하며 몰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아니 본인이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간다.

이방인의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복잡한 자신의 감정을 접어둔 시선을 읽었다고 한다면, 인간실격의 요조는 존재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 역시 기억한다. 미궁 속 주인공 신견에게서 나는 왜 자꾸만 뫼르소와 요조를 찾게 되는 걸까.

 

 


내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를 생각한다. 부정하고 싶은 나. 외면하고 싶은 나. 나를 대신해주는 또 다른 나. 그러나 어느 순간 의지하고 싶어지는 나의 분신. 신견에게는 그런 존재인 R이 있었다. 마치 키메라의 저주처럼 R은 신견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들은 곧 분리된다. 이 분리는 강압에 의한 분리에서 시작되었고 의지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떠나보냈지만 기실은 보내지 않은 어떤 것? 역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은 밀실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의처증의 남편, 그런 남편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이들의 두 아이들. 아들과 딸. 사건은 당시 12살이었던 어린 딸을 제외한 다른 가족이 전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점. 묘하게 아내 주검 위를 덮었던 300개가 넘는 종이학에 시선이 멈춰서게 된다. 그리고 나 신견은 유일한 생존자인 당시 12살이었던 사나에와의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상처를 품은 사람들은 비슷한 상처를 앓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걸까. 슬픔에 힘겨웠던 사람이 타인의 감춰진 슬픔을 더 잘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로 상처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의 상처는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 걸까.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혹은 상처를 감추고 살아간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않은가. 누구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건 조금 다른 걸까.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대리 만족. 혹은 대리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보다 더 나아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시작된 분노마저, 어느틈에 내 것으로 변해버리는 자괴감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은 내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것들이지 않을까.

 


소설이 갖는 특징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학하는 그 무엇이다. 긴장감이라고 해야할지.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이라고 해야할지. 어떤 거대한 흐름이라고 해야할지. 건조하고 혹은 무료하며 반면에 날카롭고 쓰라리기까지 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소설이 갖는 힘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 것만 같은 홀가분함을 느낀다. 이제, 미궁에서 벗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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