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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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소담출판사에서 나온 안나 카레니나 1권이다. 전권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에는 1부와 2부가 같이 실렸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여태 읽어보지 않았던가보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었다. 역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이다. 특히나 첫 문장의 번역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이 문장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느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묻고 싶어진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겐 행복한 가정도 불행한 가정도 서로 다르지 않으며 다들 비슷하다는 전제가 이미 깊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집이나 문제 없는 집은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건 그 까닭이지 싶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나 현재를 살아가는 시대나 남녀의 사랑은 거대한 폭풍의 그 무엇인가보다. 신의 뜻에 따라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평생을 아웅다웅 살거나, 혹은 미워하고 헤어지고 부정하며 평생을 증오하며 살지라도 정말이지 그렇다할지라도 남녀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지 않은가.

 


1권만 접한 관계로 부득이하게 1.2부만 따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조금만 이야를 해보자. 여기 톨스토이의 시선에 의해 그려지는 인물 안나 카레니나는 유부녀인 동시에 다른 사내를 사랑하는 부도덕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에 반해 또다른 인물 키티라는 순수한 여인은 모든 부정적이며 비도덕적인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가녀린 인물로 등장한다.

키티의 이미지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1권에서 보이는 그녀의 이미지는 상처받은 영혼이다. 한 여인의 순진함은 그렇고 그런 뭇 사내의 비열함에 의해 짓밟혔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에서 키티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레빈의 진솔한 청혼을 거절한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내 브론스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내 브론스키는 키티가 아닌 안나 카레니나를 사랑하게 된다.

부정과 치정의 소용돌이가 가득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나 저속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세밀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함께 더해지는 상황묘사가 재미를 더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작품의 배경에 짙게 깔린 러시아 사회 특히 귀족사회의 모순점들을 지적하는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보자. 우리는 과연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키티의 순정을 외면한 브론스키를 비난할 것인가. 남편을 배신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삶을 선택하려는 여인 카레니나를 비난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부인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을 우유부단하고 어리석다고 비난할 것인가.

 


작가는 작품 서두에 외도를 한 사내와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여자의 이야기(안나의 오빠 스테판과 키티의 언니 둘리의 결혼생활)를 먼저 배치시킨다. 남자의 외도는 순간의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며?, 아내는 받아주고 인내하며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과 같은 어떤 당대의 사회적 통념을 먼저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무슨 의도였을까. 문득 작가 톨스토이의 생각이 궁금해지더란 말이다. 작품에서 간간이 밝히고 있는 작가적 의도는 개방적인 연애론과 동시에 개방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결혼관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유연애와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관계로 결혼생활을 유지해가는 것이 변해가는 시대 의식임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2부의 마지막은 키티라는 인물의 변화가 예상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녀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인물로 등장하는 여인이 바렌카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 까닭은,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은 개인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 즉, 수동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이면서도 부모 혹은 사회적 편견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리라는 예측을 가능케하는 대목이 등장하면서 1권이 마무리가 된다는 인상이 강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23권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전이 될지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문득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작품 마담 보바리가 오버랩되는 걸 느낀다.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고나면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톨스토이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이야기하려 했던 주제는 어떻게 같으며 또 어떻게 다른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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