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고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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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고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일본작가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이다. 푸르고 외로운 섬. 원제는 Blue Isolated Island이다.

주인공 고지마 다스쿠는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그의 속사정을 좀 들여다보자.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기보다는 쓸모없는 놈취급을 받는 인물로, 스스로도 자격지심과 자신의 업무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외로운 섬으로 가게 된 것 역시 억지로 떠밀려 가게 된 상황이었다. 그는 많은 샐러리맨의 애환을 상징하는 준비된 사직서끼고 섬으로 향한다. 흔들리는 페리.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게 하는 뱃멀미. 그리고 절세미인.

 


다스쿠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인물은 뱃멀미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물을 건네주던 루이루이 씨다. (이하 루이루이라고 하자) 작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매력적인 케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 바로 이 루이루이다. 남성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외적인 모습. 더불어 통통튀는 듯한 목소리와 상큼발랄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청순함과 상상력을 잃지 않은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작가로부터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은 다스쿠가 외롭고 고독한 섬에 고오니가시마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된 갈등 요소는 섬의 동서 분립이다. 작은 섬이 동과 서, 또는 서와 동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배척과 이질감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려 든다. 그러나 한가지 서로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가운데 일심동체?가 되어 바라는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섬의 발전을 바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뭐랄까. 일본문화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라 굳이 어색해 할 것은 없지만, 지극히 현대적 감각으로 쓰여진 이번 작품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전통적인 무녀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도 같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해주는 무녀의 역할은, 신과 인간의 중간지대에서 두 영역과 공간을 이어주는 중간자 입장이다. 그것이 전형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무녀의 역할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반면에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무녀의 역할은 전형적인 것과는 달리 보다 더 현실적인 동시에 희극적이다.

미지의 세계인 드넓은 우주에 우주선을 띄우고 위성을 쏘아 올리는 우리 시대에, 전통을 이어가는 무녀의 역할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얼마나 든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들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결과물이 자못 다르기 때문이다. 또 받아들이는 주체 즉 누가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아마도 섬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진지함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설은 갈라진 섬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몇몇 이들이 뭉쳐 지구방위군을 구성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이 유쾌하게 이어진다.

사정이 참 많아’.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할 사정은 있는 법이라는 이 전제는, 바꿔 말하면 누구나 평범하고 또 누구나 살면서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한다는 표현으로 이해 가능하다. 루이루이가 늘 하던 이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라는 위로가 담긴 작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연 많은 이들이 모여 섬의 화합을 이끌어내고, 다스쿠도 섬의 일원이 되어 푸른 고도의 꿈을 꿈꾸게 된다는 이번 소설은 희망을 담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은 언제나 희망적이지 않은가말이다. 물론 무엇이든지간에 경중의 문제는 있겠지만. 아무려면 어떨까. 기꺼이 즐기며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이지만 단숨에 읽어낼 수 있게 하는, 책의 힘이 느껴진다. 책 속에 방탄 소년단의 노래가 소개되는 것도 내심 반가운 일이다. 내친김에 매직 숍뮤직비디오까지 찾아봤었던 것 같다.

문화란 이렇게 거대한 것이었던가. 문화의 힘이 세계를 넘어 세대를 넘어 깊이깊이 물들어간다는 것을 보는 일은, 내게는 벅찬 일인 동시에 그저 신기한 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순박함 그리고 독특한 개성을 잘 살린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소설 푸른 고도에서, 이제 감히 루이루이를 제외하고 가장 사랑하고 싶은 인물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그는 누구일까? 두 손에 꽃을 쥔 기분으로 주먹밥을 먹겠다고 하던 이 사람. 세월의 풍파도 얌전히 비껴갔던 것인지, 어린아이의 감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는 이 사람. 나는 왜 이 인물에게 꽂혔을까. 그건 비밀이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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