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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잔류 인구
오필리아는 할머니다. 칠십여년을 살아온 그녀는 쇠약하고 늙었다. 세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등장하는 젊고 아름다우며 청순한 주인공의 그 오필리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작가 ‘엘리자베스 문’은 여주인공 오필리아에게 많은 의무를 지어주고 있었다. 첫째, 나이가 지긋한 칠십 대를 그려낼 것. 두 번째,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갖는 세상으로의 온갖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어쩌면 인식과 사고, 행동과 적응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고를 끌어내도록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다. 미래 세계와 우주를 생각해보면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과 문화가 제일 먼저 연상되는 듯하다. 우주선이 날아다닌다거나 혹은 더 이상의 가치가 없어진 지구를 벗어나, 어느 낯선 행성에 정착한 미래의 지구인들을 생각하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영화나 소설 어느 한 장면 한 장면에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던가보다.
그런데 말이다. 오필리아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은 조금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디스토피아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녀가 사는 행성(콜로니)은 밭을 가꾸고, 꽃과 채소와 과일을 심어 열매를 수확한다. 재생기를 돌려 재생산을 하기도 하며, 재봉틀을 돌려 그들이 필요한 옷가지들을 만들어 입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로버트가 있다거나 개인이 사용 가능한 우주선이 집집마다 있는 그런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다. 행성의 사람들은 오래전 이 행성으로 이주해와 말 그대로 신대륙 시대의 개척지 이주민처럼 검소하고 근면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어떤 거대한 기업과 권력을 지닌 이들로부터 강요된 부당한 노동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행성의 사람들은 그런 생활을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을 이 행성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이주계획이 시작되면서부터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행성의 모든 이들이 떠나갈 때 오필리아는 홀로 남는다. 그녀가 자의로 선택한 결정이었다. 이미 그녀의 곁은 떠난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더욱이 남겨진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누구의 간섭 없이 홀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런 바람대로 텅빈 콜로니에서 스스로의 삶은 유지하기 위해 전기와 식량 등 의식주와 관련한 일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을 때, 그녀 앞에 불쑥 다른 종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 오필리아는 새로운 외계 종족(외계인)과 소통과 교감하면서 그들 세계에 들어가 안착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된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외계 종족과 대화하고 감정을 느끼며 그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는 오필리아의 역할을 새끼를 보호하고 지키며 양육하는 존재 ‘둥지수호자’라고 정한다. 오필리아의 입장에서는 더이상 노동의 가치가 없어져 늙고 나이들어 버려진 하찮은 존재가 아닌, 진정한 존재가치로 새롭게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반면 외계종족의 입장에서 보는 오필리아는 늙었지만 경험이 풍부하고, 어린종족(자식들)을 키워낸 저력과, 삶의 지혜를 잘 알고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존재로 각인된다.
아이러니한 비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존재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해야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만이 위대한 문명의 주인공이고, 발달한 과학을 영위해야 한다는 통념은 일종의 이기적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품에서 지구인들은 외계 종족이 지구인의 과학기술을 배우는 것을 혐오?하고 저지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은 그들 나름의 사회의 틀과 규범 안에서 그들만의 인식과 지식을 이미 오래전부터 공유해왔던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생각을 조금 더 넓게 펼쳐보자. 책은 여전히 인간만이 절대적으로 고집하는 대로, 서로 다른 종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식의 비판을 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인간존재가 타 종족을 정벌하고 오직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인식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에 대한, 여전히 미래에까지 있을 법한 어떤 부조리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외계 종족에게 있어 인간은 그저 또다른 외계 종족일 뿐이지 않은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미래의 시기에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은 상상력을 통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는 나약하지만, 당당함과 유연함의 부드러움을 지닌 나이든 여자. 오필리아는 그녀만이 지닌 삶의 경험을 지식으로 끌어안은 멋진 인류로 내게 각인되고 있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지친 인류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어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설 속 오필리아는 스스로 강해져 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녀의 선택에 의해 종족과 종족이 새롭게 번식하고 교감하며 번성해간다는 데 의미가 있을 법도 한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어서 더 흐뭇하다. 미래의 우주 시대라고해서 해피엔딩을 논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파란 망토가 너무 좋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