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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권력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 - 믿음의 흥망성쇠로 이해하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안혜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종교 권력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
종교와 정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가보다. 종교 권력이란 표현에 중세시대를 생각했던 것일까.
가끔은 책에 대한 처음 생각과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또 완독 후에 드는 생각마저 달라지는 순간도 때때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생각은 일종의 선입견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기대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은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종교 권력에 대한 이번 책은 당연히 처음 생각과 읽는 과정에서 들었던 느낌과 생각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책은 정말 많은 나라를 언급하고, 그들이 추종했던? 종교를 언급한다. 아. 그런데 이곳에서 추종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종교든 권력이든 사람의 일이라는 건 변함이 없는 일이기에, 결국 이번 책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더란 말이다.
4부로 진행되는 책의 구성을 좀 들여다보자. 1부는 동아시아 편, 2부는 인도, 동남아시아, 3부는 유럽 그리고 마지막 4부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나눈다.
책에 대한 느낌은 뭐랄까, 광대한 자료 내지는 정보가 담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점이 내게는 좀 부담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욕심을 내려놓고 사심 없이 읽어가면 좋을텐데, 연필 한 자루 꼭 쥐고 줄 긋기까지 하면서 읽다가 자주 지치곤 했던 순간이 있었음은 일종의 부끄러운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몇 가지만 정리해보자. 우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로 뻗어나갔던 종교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역사 이야기도 함께한다. 조선의 소중화(작은 중국) 사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섬나라 일본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그들만의 종교를 유지했다고 한다. 책을 쓴 이가 일본인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가 아님에도 언급하게 되는 건 왜일까. 이건 사담이다. 그가 일본인이라는 조건은 책의 가치를 절하하는 차원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듯도 하다는 말도 역시 사담이다.
객관적이면서도 역사적 사료와 근거에서부터 나오는 그만의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한결 더 친근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그 외 책은 베트남과 태국, 미얀마, 티베트 등등 이야기는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
주목했던 부분은 아마도 티베트에 뻗어있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권이 아니었을까. 현재까지 티베트와 관련해, 중국은 그들의 정치적 이용목적과 가치에 있어 절대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편에서 저자는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를 주로 언급한다. 물론 기타 주변국들과 다른 종교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힌두교 의식 중 ‘사티’에 대한 이야기를 좀 꺼내보고 싶다. 사티란 ‘19세기까지 여성을 산 채로 화장하는 힌두교 의식’(p86)이다. 설명을 하자면 유아혼으로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남자와 혼인하였지만 남편이 먼저 죽게 되었을 때, 홀로 남겨진 어린 소녀들을 산채로 화장하는 의식이다. 이를 거부하는 여성은 최하층민으로 존재가치가 추락하게 된다고 한다. 책은 ‘사회적으로 말살’(p87)이라는 표현으로 사티가 갖는 ‘사회적 위압감’을 대변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종교는 때론 막강한 힘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했을까. 사회적 정치적인 것을 뛰어넘은 그 이면의 부분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종교가 갖는 특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이 저자가 말하고 있는 종교 권력의 일면이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 종교 및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역시나 방대했다. 딴은 이슬람교와 관련한 중동 쪽 이야기보다는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까닭을 생각해보니 오래전 학생시절에 배웠던 세계사 시간이, 중동보다 유럽을 더 자주 언급했던 데서 이유를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그저 변명에 그칠 일이다. 루터파의 종교개혁이 정치적으로 이해관계에 의해 이용되었다는 저자의 견해는 내가 알던 세계사와는 다른 성격의 내용이었다. 어쩌면 내가 많은 것을 알지 못한 결과에 의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영국 국교회를 둘러싼 헨리 8세와 메리 여왕, 그리고 다시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종교 권력과 그 시대를 대변하는 역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역시 그 힘의 위력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잔존하고 있음을 지금까지도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 각설하고 책 이야기를 다 요약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 정리를 해야한다.
단적으로 볼 때 종교는 언제든 정치와 돈과 권력에 의해 이용되는 것에 불과했다는 게 이 책의 주요 골자라고 할 수 있을까.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황제도 교황도 더 높은 권좌에 오르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가 보다.
딴은 말이다. 수세기 동안 새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크고 작은 나라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섬기는 종교가 존재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합쳐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으며, 서로 투쟁과 반목을 거치며 권력의 도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도, 결국 종교라는 이름의 문화 사회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