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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산책 -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도대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그럴수록 산책
-따뜻함과 산뜻함의 위로
표지가 산뜻하다. 이런 색을 무슨 색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초록에 옅은 노랑색을 혼합했을 때 볼 수 있는 색일지도 모른다. 글과 그림 (카툰)을 함께 싣고 있는 책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얇고 가볍다. 그래서 어쩌면 산책할 때 한 손에 들고 가도 부담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도대체’ 라는 필명으로 책을 냈다. 글과 함께 직접 그림도 그렸다. 카툰 형식이다. 두세 컷에서 여덟 컷을 넘기지 않는다. 이번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그림은 글과 함께 동등한 역할을 해준다. 그건 아마도 그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진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인상은 산뜻하고 가볍지만 사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사색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인 시선이 가득하다. 작가는 어려운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거나, 그렇게 삶이 자신에게 도전장 혹은 불편하고 어색한 손을 내미는 때마다 밖에 나가 걷는다고 고백 한다. 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이 글을 쓴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자신을 향해 마주보면서 다시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뭐랄까. 작가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 혹은 거친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게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산책을 하며 걸어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과 교감을 나눈다. 나무와 새 혹은 바닥을 기어가는 작은 다양한 벌레에게까지 말을 걸고 마음을 열고자 하는 모습과 더불어, 순수함과 엉뚱함으로 무장한 그녀만의 따뜻한 생각들이 묘하게 이뻐 보이고 그냥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선택한 삶도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어떤 삶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는가, 라는 화두가 아닐까. 책은 조급함을 뒤로하고 천천히 시간을 즐기며, 순간순간 성실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게으름에서 나오는 나태와 느림이 아닌, 치유와 위로에서 나오는 성실과 느림의 미학이다.
-그 노란 계단을 밟으며 깨달았습니다. 지금처럼 제가 별의 별것에서 힘을 얻는 한, 저에게 늘 희망이 있을 거란 사실을요. 세상은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제 앞에 펼쳐져 있을 테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어떻게든 힘을 내려는 마음이 있는 한, 저는 또 남들이 보기엔 변변찮은 무언가를 찾아내 희망의 증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p199

-나를 속이고, 조이고, 때리고, 울릴 수도 있는 세상에서
무심히 나를 지나치는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 p201
때로는 그냥 지나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너무 소중하지 않은가. 읽는 이에게 자분자분 위로의 말을 걸어줄 것 같은 책. 도대체의 ‘그럴수록 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