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련 - 선지식과 역사를 만나는 절집 여행
제운 옮김, 양근모 사진 / 청년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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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그렇게 잠시 멈추다

 



자료를 찾아보니 주련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문구라고 했다. 기둥이나 벽에 써 붙이는 한시라고도 하더라. 사실은 주련이란 표현 자체가 무척 낯설다. 사찰에 그다지 많이 가보지 못한 데서 오는 우매함일까. 설사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더라도 한문으로 흘려 쓴 글씨를 읽고 해석하며 이해하기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을 법하다.

 



책의 저자를 확인하면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책은 그러니까 책 속에 실린 주련을 번역한 이가 따로 있고, 나머지 수필인 듯 자신의 생각을 풀어쓰고 사진을 찍은 이가 따로 있다. 누구의 이름을 먼저 올리는 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몃 파고드는 잡생각이 발목을 잡는 건 왜인지 모른다.

책은 주련만을 중심으로 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련이 중심이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개인이 느끼기에 이번 책은 전체적인 글을 쓴 양근모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번역된 주련은 책의 깊이감을 살려주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딴은 주련을 번역한 제운스님이나 글을 쓴 저자 양근모에게 있어, 무엇이 중심이며 어떤 것들이 먼저인지 논하는 문제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은 대한민국 곳곳에 자리한 크고작은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각각의 사찰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유래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각 사찰과 인연이 닿았던 스님들의 행적과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또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풀어내며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저자가 발품 팔아 오르며 찾아간 사찰에서 느끼고 깨달은 진득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느낌은 지극히 사변적으로 다가온다. 적어도 내 시선 안에서는 그렇다. 수필처럼 일상처럼 이야기가 잔잔하다. 시적인 표현으로 감각적인 동시에 때때로 문장이 유려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대체로 책에 대한 느낌은 그렇다.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흑백으로 담아낸 사진들이다. 사찰의 풍경을 찍어낸 흑백사진은 각 사찰을 소개하는 내용보다 한발 앞서 시선의 흐름을 붙잡는다. 내가 너무 사진에 집착하는 걸까.

사진 속에는 고즈넉한 절집 기둥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들하며 말끔하게 정돈된 마당이 소박하게 말을 건다. 또 눈 덮인 기와의 물결이 부드럽게 펼쳐지기도 하며, 거친 절벽 위에 작은 절집과 무언으로 수행 중인 스님들의 바쁜 걸음도 뒤를 따른다.

 



오래전 학생 신분이었을 때 우리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답사를 떠났었다. 아침에 경상도에서 이른아침 밥상을 얻어먹고 지리산 노고단을 올랐다가 까만 어둠이 짙어질 무렵 전라도 어디쯤 짐을 풀었었다. 그 며칠동안 두 곳의 사찰을 찾았었다. 부처님의 불상이 아닌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통도사와, 전남에 있는 송광사였던가. 송광사에 도착했던 시간이 벌써 많이 늦어진 까닭에 다시 내려올 무렵에는 해가 지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책은 어쩌면 소소하게는 개인의 낡은 기억을 소환하며, 크게는 부처의 마음과 세상의 온갖 화두를 건져 올리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그런저런 생각을 가져오게 했던 책이지 않았나싶다.

 

 



-그런데도 무아(無我)’라는 소식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미운 사람은 밉고, 고운 사람은 곱단 말입니다. 나한테 좋게 한 사람은 분명히 보고도 싶고, 나한테 짓궂게 한 사람은 또 밉단 말입니다. 이것저것 다 버리고 화두 하나만 들고이 목숨 다 바치겠다는 그런 각오로 들어갔지만 그런 속에도 라는 관념을 떨치기가 쉽지 않더란 말입니다. -P137

 

 

 


-번뇌를 벗어나는 일은 예삿일 아니니

고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P147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이 부처님 마음일세

선정에 든 가섭존자 천 겁토록 고요한데

많이 아는 아난존자 한평생 바쁘구나 (향적당)-P470

 

 



나의 사심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을까. 내게도 미운 사람이 새로이 생겨나 그랬는지 이 책을 더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고삐를 고쳐 잡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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