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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평점 :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그 무엇
프랑수아 를로르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가보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외 건축 역사 그림 문학 등 여러방면에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소개글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책 표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다. 느낌이 좋다. 아이들 그림책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털모자가 달린 두꺼운 겨울 외투와 투박한 벙어리 장갑을 낀 검은 머리의 사내가 가만히 웃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손에는 수줍은 듯 소박하게 피어난 꽃다발이 조심스럽게 들려있다. 흰 눈이 희끗희끗 날리는 회색빛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얼굴만은 따뜻하고 온화하다. 왜일까.
그의 이름은 울릭이었다. 그는 저 멀리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족의 일원이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성장하는 아픔을 지닌 사내다. 이야기는 울릭이 그의 나라와 그의 부족인 이누이트족을 떠나 현대 문명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되면서 펼쳐진다. 작가는 주인공 올릭의 시선으로 그가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과 그의 생각들을 그려가고 있다.
책은 시종 소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실 이번 책은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중요한 논쟁거리들을 불러오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여성과 남성의 시대적 혹은 사회적 문제라든지(사실 여기에서조차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또다른 문명의 붕괴와 같이 다소 익숙하면서도 나름 도전적인 성격의 논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슬펐던가보다. 주인공 울릭을 그런 사회적 연대나 혹은 비판과 비난의 이슈 한가운데 서 있게 한 작가의 의도가 불편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 순박하고 청순하며 의리 있는 북극의 용감한 사냥꾼이, 그저 맑은 영의 조력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극복해, 다시 그의 나라와 그의 부족으로 잘 돌아가기 흡수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으면 했다.
그러나 소설의 전개는 다소 씁쓸하게 전개된다. 작가는 올릭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과 관련한 우리 시대의 편견과 자잘한 불협화음과 같은 사회문제를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고 있었고, 작품에서 등장하는 다수의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쯤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되돌아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가 처음부터 그런 주제와 소재로 글을 썼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자꾸 다른 한쪽으로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가보다. 때문에 이 허전하고 텁텁한 기분은 어떻게 쓸어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과, 문명의 이기에서 오는 문화의 충돌과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한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문제는 늘 그렇듯 쉽게 받아들여 답안지를 내놓기가 어려운 화두이기 때문일까.
이누이트 족의 문화는 이전 세대가 살아왔던 그런 오래된 문화였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한다. 반면 여자들은 집(이글루)를 손보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희생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그 문화는 비교당할 필요가 없는 그저 그들만의 고유한 삶의 순간순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고 다른 문화의 대립과 충돌을 두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어보인다. 어쩌면 말이다. 작가는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를 두려워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오래된 근원으로 돌아가 되찾아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그런 어떤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연유로 우리의 친구 울릭의 마지막 선택이 더 가치가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분량에 비해 다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따뜻한 소설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