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디 클라크 하하하
-성장통 그리고 삶의 모습
책이 언제부터 집에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책값이 6000원으로 찍혀있다. 가격을 보면 아마 꽤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 아닐까 싶다. 책값의 변천사를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저자는 로디 도일이며 더블린 출신이다.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몇 권 읽어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부터인지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주는 묘한 끌림을 넘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아이랜드 그리고 더블린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켠이 무겁고 음습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따뜻하다. 왜일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느 작품에서나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울며 웃으며 고통받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담은 게 바로 문학이라고 하지만 왜 유독 나는 더블린에 꽂혔는지 모르겠더라.
이 책의 저자도 더블린 출신이라는 점에서 괜히 친근감이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번역한 작가에 대한 일방적인 호감 때문일까. 번역 작업을 한 이는 소설가 김훈이다.
더블린. 그리고 김훈. 무엇보다도 하하하. 라는 단어가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웃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유쾌한 웃음.
책에 대한 느낌은 그랬다. 무겁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랐다. 다 읽고 나면 나도 하하하, 까지는 아니더라도 크크크, 정도의 의성어 정도는 소리 낼 수 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막상 책을 읽는 동안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요 못된 꼬맹이들이 하고 다니는 망나니 짓거리들을 짐짓 태연하게 보고 있자니, 슬슬 감정의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무언가가 끓어오르기도 하더란 말이다. 요즘 시대 같아서는 뉴스에 나올만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아이들은 낄낄거리고 으스대기 좋아한다. 그렇게 이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위계질서를 잡아가면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에 그들만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친구를 때리고, 고문하며, 상처를 주고, 왕따를 시키는 일들이 이들 사내아이들의 생활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처럼 보여진다. 항거하거나 반기를 들면 무리에서 쫒겨나기 때문에 저항하기 어렵다는 것은 암묵적인 약속으로 정해져버렸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나 어른들의 비뚤어진 세계나 다를 게 없어보이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주인공 패디 그러니까 패트릭은 동생 신배드(프랜시스)와 두명의 여동생과 부모님과 함께 살아간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와 늘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희생하며 노력하는 어머니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일면도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은 악동 기질을 타고난 패디와 단순히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기보다는 가족의 문제와 소년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나의 단단하고 안정된 스토리가 중심을 잡고 자리를 잡아가는 형식이 아닌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연계 형식인 이 소설은, 사실 형식면에서는 살짝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가족애와 성장통이라는 주제에 맞는 부분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소설 중반부 이후에서 두드러지는 부모의 잦은 싸움에서 그 맥락의 한 줄기를 찾아낼 수 있다. 부모님의 잦은 싸움을 곁에서 지켜보며 불안해하는 아이 패디가 느끼고 경험하는 혼자만의 고통에서 소년이 외로운 성장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연민한다. 아버지의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여러번 되뇌이기도 한다. 오로지 부모의 싸움을 말리고 싶은 소년은 잠을 자지 않는 불침번을 서기도 하고, 동생과 함께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괴로움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또 함께 몰려다니던 무리에서조차 떨어져나올 것을 선택하는 주인공 패디는 무리의 수장과 결판을 내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 혼자이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버리고 아버지가 집을 떠나가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집을 나가야만 했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어떻게 펼쳐질까.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강렬하지도 뜨끈뜨끈하지도 않지만 어쩐지 애잔하다. 그만하면 됐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자 김훈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웃음의 익살. 슬픔의 페이소스’p381 그는 슬픔의 페이소스라는 표현을 남겼다. 무언가를 기대치에 맞게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읽지 말라했던 김훈의 속내를 알고나니 더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지금부터는 온전한 사설의 시간이다. ‘혼돈의 시기는 곧 지나간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개개인의 고통과 어려움과 슬픔 등 모든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고 그러다보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순간들이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혼돈의 시기도 결국은 지나가준다니.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가슴의 멍을 많이 간직하고 산다는 의미로 생각한지 오래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늘 그렇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성장통을 통해 경험하는 또다른 무언가를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결과의 빛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저마다 꿈꾸는 빛깔이면 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개구쟁이. 말썽꾸러기. 아니 그냥 악동. 그런데 어쩐지 밉지 않고 안쓰럽고 곁에 있으면 꼭 한번쯤 안아주고 싶은 패디. 읽는 동안 마음의 부담 없이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쓰고 싶어진다.
-번역된 책 표지 사진이 없어 원서 사진으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