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삼국지 원전 최신 완역판 박스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장현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삼국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삼국지를 접한다. 오래전 지인이 말하기를 여성작가 작품이나 자잘한 소품에서 벗어나 스케일이 좀 큰 대작을 읽어보는 게 더 좋겠다, 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때 그이가 권했던 책이 삼국지였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스무 살 언저리에 열권 전집으로 보았던 이문열의 세계문학전집 이후 다시 도전한 전집이 바로 이번에 읽은 삼국지였다.

삼국지에서 지,라는 글자가 한자어로 땅지(地)가 아닌 뜻지(志)라는 것을 알려준 건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세 나라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세 나라의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 옳은 것일까.

 

삼국지라고 하면 매번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으로 보았던 내용으로, 세 남자가 만나서 의형제를 맺는 대목만이 기억이 날 뿐이었다. 실은 이렇게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유비가 나오고 그의 의형제들 관우와 장비가 나오고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만화 삼국지에서 보던 조조라는 인물까지가 내가 아는 등장인물이다. 이를테면 유비는 고결한 선비 같으며, 장비는 뚱뚱하고 성격이 급한 반면, 관우는 생각이 있고 일의 순서를 알았던 인물이라고 기억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조조가 무조건 간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 각인된 까닭을 모르겠다. 아마도 만화의 영향이 컸던가보다.

 

각설하고 삼국지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보자. 우선 유비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 종종 너무 유약한 모습으로 보였다. 시대를 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각인되었던 명성에 맞지 않게 종종 그는 비참하게도 적군에 의해 쫒기며 이리저리 배회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물론 때로는 의연함과 비루함 사이에서 교묘하게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 하면 떠오르는 세 명의 인물보다도 오히려 장비와 비슷하면서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인 여포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때론 사랑에 중독되어 주군을 배신하는 위험한 순정파의 단면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조조 역시 무조건적으로 미워만할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조조 역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며, 나름의 배려와 아량을 겸비한 자라는 것을 책은 말하고 있다. 한때 이 사람 조조는 유비와 관우와도 각별한 관계였다. 그 관계라는 것이 완벽한 긍정의 목적과 의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이들의 관계는 잠시나마 서로간의 신의를 느끼게 하는 관계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격돌한다.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주군을 섬기며, 그 아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릴 것 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주군을 위해 거침없이 적장으로 나아간다. 특이한 것은 아무리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신분의 고하를 넘어 그 사람의 이름과 출신 배경을 짧게라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서로 맹렬하게 전투를 하면서도 서로 이름을 확인하는 내용(그게 무사들의 예의 인가보다)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이기도하다. 주군이 누구든지 간에 그 아래에는 주군을 돕는 용맹한 장수가 반드시 있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이 존재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삼국지는 결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과 전쟁을 통해 인물들의 계책과 처세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용맹한 장수와 장수들의 대격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는 동시에 전쟁을 통해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들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정리하자면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동지가 너무나 쉽게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상황으로 요약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들의 행보는 이해득실에 의해 합쳐지거나 분리되며 화친을 했다가도 적으로 다시 돌아선다. 정세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정세의 흐름을 각자가 만들어간다고 해야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재갈량의 뛰어난 재략이 있었기에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조연은 달리는 말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조자룡과 유비에게 재갈량을 소개해준 서서와 같은 많은 이들의 몫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기든지 힘없는 군주와 그의 나라는 간신과 외세에 의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는 영웅과 함께 간신(간웅)도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도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승패는 병가지상사(病家之常事). 사람의 성패는 모두 때가 있습니다. 때가 오면 스스로 열리고 때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됩니다. 긴 인생을 살아가려면 일이 바라는 대로 되어도 자만하지 않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있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지만 흔들리지 말고 거기에 빠지지 말고 처신을 대범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공명편-p188

 

왠지 모르게 아직도 나는 나의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라는 말을 해보고 싶어진다. 사는 동안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 삼국지. 영웅호걸의 이야기 속에 삶의 진정한 교훈이 들어있는 대작이다. 그러나 책에 오탈자가 많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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