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작은 방 - 낯선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위한 쓸쓸한 안식의, 1인분의 방
노현지 지음 / 더블유미디어(Wmedia)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연남동 작은 방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을 안겨다준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새로움의 그 순간이 있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어떤 순간도 마주하고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게 인생인데 말이다. 기실은 사람마다 성격과 성향이 다 같지 않으니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쳐가는가도 사람마다 다 다른 색체와 향기를 풍기는 듯하다는 말이다.

    

 

상급학교로의 진학, 첫 직장, 부모로부터 처음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는 순간도 그렇고, 첫 연애 감정이나 첫 실패와 좌절 등 모든 처음이라는 순간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때때로 우리를 당황하게도 하기도하고, 혹은 더 단단하고 강하게, 때론 유연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믿게 되는 것 같다.

여기 ‘연남동 작은방’ 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 권 있다. ‘낯선 첫발을 내딛는 이들을 위한 쓸쓸한 안식의, 1인분의 방’이라는 부제가 작은 글씨로 덧붙여져 있다. 연남동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얼마 전까지 방송에서 자주 언급되던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책이 말하는 연남동은 방송에서 알려주는 그 연남동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저자 노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들어가면서 홍대 근처에 자취방을 얻게 되는데, 홍대를 마주보고 있는 조용한 동네였던 당시 연남동에 집을 얻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가 집을 얻게 되었던 당시의 연남동은 계발이 아직 되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였기에, 밤이 되면 혼자 걷기에도 좀 겁이 날 정도로 어둡고 조용한 곳이었다고 고백한다. 원룸 스타일의 이 작은 방에서 그녀는 학생시절 기숙사의 단체생활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생경스러운 감정에 자주 빠져드는 자신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멀리 부산에 떨어져있는 부모와 언니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향수병에 젖어들 때도 있었다. 장염에 걸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다시 병원에 가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길고 긴 불면증에 걸려 몇 개월을 고생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정신과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기도 하며, 수면유도에 대한 의술의 힘(수면다원검사)을 빌리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자는 불면이 육체적인 문제보다는 심리적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집착이라는 감정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은 타인의 존재감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외로움과 허전함, 두려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진지하게 경험하는 주인공인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사실 저자 노현지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가 이러한 많은 감정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움과 고충을 자주 하소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적절히 녹아들어 나름대로 잘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녀의 연남동 작은방 스토리의 마지막은 어떻게 흘러갈까. 스스로의 분투와 인내의 과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4년 동안 함께 했던 연남동의 작은 방과의 이별을 선언하는 것으로 작은방 이야기의 종점을 찍는다. 훗날 딸과 함께 애틋하고 순수했던 과거와 조우하며,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마무리된다.

    

 

연남동 작은방은 여느 에세이보다 조금은 더 개인적인 고백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혼자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일기처럼 보인다. 감정의 솔직함을 무기로 거친 세상 밖으로 조심스럽지만 가볍지 않은 출사표를 던지는 그녀만의 편안한 글들이 읽는 이에게 조용하게 와 닿는 걸 느낀다. 저자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뜨거웠노라고 고백한다. 딴은 책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이들에게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다’,라는 긍정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도 하다.

    

 

최근에는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유행을 한다. 이 보다 앞서서 유행했던 문구는 1인 출판 시대가 아니었던가. 누구나 생각이 있으면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던 시대는 이미 몇 년 전에 시작되어 지금도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흐름이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이번 ‘연남동 작은방’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혹은 문학이 스스로 높게 올려놓고 있는 형식과 기준으로 어떤 하나의 단단한 바리게이트의 빗장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개방의 시선으로 모든 글로 만들어진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방향의 전환이, 앞으로도 계속 꾸준하게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해가는 전문성의 기준에 대한 변화와 다양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 어떻게 수용하는 게 옳은 일인가에 대한 소심한 생각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작은 카페와 맛 집이 많이 생겼다는 연남동. 시대의 흐름을 따라 한번은 다녀와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애틋함과 향수가 짙게 배어있을 법한 그 골목 어딘가를 또 다른 누군가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다녀갈지도 모를 연남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