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 90세 현직 정신과 의사의 인생 상담
나카무라 쓰네코 지음, 오쿠다 히로미 정리, 정미애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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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 남들보다 병원 출입이 잦은 나도 사실 내과의사 이외에 정신과 의사는 낯선 분야의 어색한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래전 언젠가 아이 상담 문제로 말 그대로 상담을 몇 번 받으러 다닌 적도 있긴하지만, 사실 진료라는 의미가 대화위주여서 상담이라고 해서 딱히 특별난 게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쩐지 비교적 신뢰가 가지 않는 듯한 얼굴에 그는 내게 여러 가지를 질문했고, 나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건넸던 것 같다.

다른 병원 분위기처럼 책상이 있고 둥근 의자가 있거나 혹은 간의 침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키 낮은 탁자를 가운에 놓고 푹신한 소파와 안락의자가 있는 분위기였다.

 

내가 만났던 의사가 책속에 등장하는 여의사 쓰네코 선생 같은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살면서 의사가 아닌 인간 본연의 사람으로서 의사를 만나고 싶은 순간은 정말 많은 것 같다. 지금도 아니 오늘도 병원에 다녀오면서 다시금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의사란 어떤 사람들이 직업군을 삼아 종사하는 일일까. 삼분.. 혹은 오분 간격으로 새로운 환자들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올 때 마다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언가 의무감에 젖어 짧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치 뭐랄까. 엉뚱하게도 나는 오늘 내 주치의를 보면서 신 내림을 받고 손님을 받는 어느 닳고 닳은 경험 많은 무속인을 떠올렸었다. 조금 미안한가. 아니다. 쓰네코 선생의 이야기처럼 무슨 일이든 깊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가 혼자 속을 끓인다고해서 상대가 바뀌는 건 아니니 말이다.

 

쓰네코 선생은 일본이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남자의사들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던 순간에 우연치 않게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책에서 그녀는 스스로 간절하게 원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적지 않은 나이인 여든이 넘어서까지 이어져오는 그녀의 진실하고 담백한 의료행위는 어떤 뚜렷한 목적을 달성해야한다는 것보다 환자들과 함께 삶을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그녀는 의사인 동시에 여성이었고 그런 까닭에 딸이었으며, 아내였고,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고충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더 큰 울타리 안에서 보면 인생을 먼저 살아낸 동시대를 살아가는 선배로서의 다정한 충언과 위로가 가득한 책처럼 보이는 이 책은, 의사인 동시에 이웃에 사는 어느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잔잔한 마음의 토닥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를 존중하라’는 쓰네코 선생의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게 잘 통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선생의 마인드는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다. 그것이 그녀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일까. 쓰네코 그녀는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서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또한 막지 않으며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이어가는 인간관계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하고 거리를 두라고 충고한다. 체념인지 달관인지... 딴은 숭고한 자기희생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쓰네코 선생이 말하는 체념의 이미지는 그 조차도 긍정적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각설하고 그녀는 이러한 긍정의 자기체면과 같은 마인드를 ‘무난한 대응’이라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고독사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라는 의미를 대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독사는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삶의 마무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속 좁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아마도 쓰네코 선생님 잔소리 같은 말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아직도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군요. 그저 자연의 순리처럼 받아들이세요...라고 말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사이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불편한 관계일 수도 있다. 물론 의사도 사람이라는 점은 이해해주도록 해주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어지는 욕심을 오늘 내 주치의는 알까 모르겠다. 괜시리 사설이 길다.

 

책은 어렵지 않게 빨리 잘 읽힌다. 보통의 삶의 지침서는 이미 많이 나왔지만,

주체가 의사여서 그리고 나이 지긋한 여성이기에 이 책은 또다른 시점과 관점으로 인생과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무겁지 않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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