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미사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책은 쌍둥이의 대한 이야기다. 나와 똑같이 닮은 또 다른 인격체의 존재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생물학적으로 복잡한 유전적 관계라든지 세포분할이후 세포와 세포가 결합하고 분열하는 과정을 따져보는 일은 골치가 아파오는 일이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여전히 쌍둥이의 존재감은 보통의 하나의 단일한 존재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신비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며칠전 시내에 나갔다가 서너살 쯤 되어 보이는 일란성 쌍둥이의 여자아이 두 명을 데리고 가는 젊은 여인을 본 적이 있다. 두 아이는 똑같은 옷에 양갈래로 묶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했지만 한 아이는 말없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가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엄마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성격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아이들은 결국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서로 싸우기까지했다. 한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짜증이 심했지만 다른 아이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책속에 등장하는 모나와 모디처럼 말이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자. 모나와 모디는 거울에 비춰보는 듯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두 소녀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모나는 적극적이고 활발하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잘 표현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에 동생 모디는 매사에 소극적이며 스스로 움츠러드는 조용한 아이로 나온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동생인 모디가 재력가와 정치가들의 자식들이 다니는 유명한 귀족학교 뤼인고등학교로 다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로 교복을 바꿔 입고 서로의 학교로 대신 가는 행동을 두 아이는 역할놀이라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모나가 모디의 학교로 또 모디가 모나의 학교로 가게 되면서 각자가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사이에서 관계를 형성해간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평범한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물론 후반부에 가면서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혹은 조금은 당혹스러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스토리를 이어간다.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이번 소설이 지금까지 나왔던 쌍둥이를 소재로 한 여느 작품들처럼 그들이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사고를 포함해서 각자의 의식과 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은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사소한 혹은 비중 있는 사건들을 접하고 해결해가면서 밝은 분위기로 결말을 내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속상하지는 않았을 법하다는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여느 작품들과 큰 차이점 없이 무난하지만 식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말이다. 어쨌든 이번 타이완의 작가 미사의 작품은 학원물이며,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형식과 분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 요소만으로도 일정부분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상큼발랄하면서도 싱그러운 주인공들의 이미지는 잘 살아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자 그러면 소설에서 나오는 반전은 무엇일까. 한 가지만 언급해보자. 하나의 육체에 두명의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사실 처음 소설의 이미지 즉, 학원물이며 하이틴 로맨스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진행에서 다소 생뚱한 전개처럼 보여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분위기는 급격히 전환되고, 주인공들의 심리 역시 불안전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가졌던 소설의 분위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달라져가는 무게감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무난하면서도 약간은 식상하나 그저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쌍둥이들의 이야기가 본질이 아니었던 것이었을까.

솔직히 이 소설에서 반전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너무 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 많이 앞으로만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굳어버린 상상력을 탓해야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게 조금은 당혹스러운 이야기의 한 부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사실은 살짝 과하긴 했지만 사건의 고비인 동시에 클라이막스를 지나 어두운 동굴 밖으로 나온 주인공들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뤼인 고등학교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 지웨이칭, 저우잉웨이, 텐무펀과 그 앙숙으로 등장하는 딩옌링, 란관웨이 선생님인 동시에 펜팔 친구인 코트다쥐르를 생각한다. 작가는 뭐랄까. 혼자가 아닌 나, 혼자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한다는 것에서 오는 긍정의 에너지. 위로와 위안의 힘이 개인의 존재감을 굳건히 하고 서로의 존재감과 관계에도 단단한 끈이 되어 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 ‘인어가 잠든 집’이 생각이 나더라. 왜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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