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수기 ㅣ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39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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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수기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선입관은 어떤 면에서 매우 위험한 요소를 갖는다. 러시아 작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에 대한 선입관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으레 러시아 문호들의 분위기를 연상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떠올렸고, 이들 작가가 풀어가는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 등을 투르게네프의 글에서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은 예상을 조금 빗나갔다. 사냥꾼의 수기는 그렇게 딱딱하지도 않고, 무게에 짓눌리지지도 않으며, 때로는 오히려 부드러운 서정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것을 인간애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으로서 감동하고 이들이 서로 공감하고 함께 삶을 공유하는 가운데에 어쩔 수 없이 간극을 만들어가는 필연적 요소로 등장하는 계급사회에 대한 언급 역시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 등장하는 ‘호리와 칼리니치’라는 짧은 단편에서부터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당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또 하나의 낡은 선입관에 대한 섣부른 고정관념을 이제 수줍게 슬그머니 뒤로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일까, 를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작가는 작품에서 여느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된 생각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해왔던 제정 러시아 시대의 농노에 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노예제도 즉 농노는 주인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그들은 그저 주인에게 예속된 존재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역시나 지배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한명한명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단편 중에 몇 편은 사회적 모순과 당시 부조리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비참하게 묘사되고 있는 부분도 등장한다. 특히 작품 ‘영지 관리인’이 그 예이다. 작품은 영주가 아닌 그 아래 계층으로 등장하는 관리인에게 의해 약탈당하고 인간적으로 상처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는 농노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작품에서는 농노(을)의 탄원이 성공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이들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와 탄원은 울림이 없는 순간의 외침일 뿐이었다. 귀족과 지주세력(갑)은 또 다른 갑과 동조하기 쉬우나, 반대되는 세력인 을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들의 소리를 처음부터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결과는 조금은 암울하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은 결과로 넘어가고 있다.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는 까닭에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의 이야기, 딴은 예속된 그 삶에 대한 담담한 순종이 어떤 면에서는 또다른 신에 대한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 여인의 죽음과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의사의 이야기 등과 같이 책은 단순한 귀족과 농노의 날선 쟁점위주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닌 그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결국 투르게네프는 작품에서 순수한 인간성이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책은 심각하지 않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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