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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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를 알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금 더 복잡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깊고 날카로우며,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전 울프의 처녀작 출항을 나는 어떻게 읽었던 것일까.

왜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이렇게 오래도록 침잠하며 몰입하는가를 생각한다. 또 가끔은 울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묘하게도 오래전에 알았던 작가 전혜린을 연이어 생각하곤 한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3기니에서 울프가 열거하는 많은 여성 작가들과 함께 전혜린을 생각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한다고, 아니 그러면 어떨까, 하며 울프에게 나직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전쟁과 함께 무엇보다도 여성에 사회적 위치와 입지에 대해 깊이 몰입하고 분석하는 동시에, 두 가지 성인 여성과 남성을 떠나 보편적 인간으로서 한 생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필수조건으로 등장하는 경제적 조건인 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라는 조건부적 한계를 지닌다. 아주 부자거나, 혹은 아주 가난하여 빈곤한 계층의 여성은 조금은 열외로 하되, 버지니아 그녀 스스로가 처한 사회적 인식 안에 자리한 여성의 위치를 대변하는 조건인 셈이다.

 

편지글의 형식을 빌려와서 어떤 소설의 형식이라든지 클라이막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보았던 부분은 작가가 소설의 형식이 아닌 에세이라는 틀 안에서 서간문의 형식을 빌려오게 된 까닭에 부분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책은 아주 논리적이면서 분석적인 작가 버지니아의 논지와 그녀만의 세계관을 그녀의 입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지를 받을 누군가와 마치 같은 시공간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는 듯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당대 여성들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가부장적 세계관에 입각한 남성위주의 편협한 인식들이 만들어낸 관습이라고 할 때, 이에 대해 남자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 여자 형제들에 대한 사회적 부당한 차별을 언급한다. 작가는 글을 쓰기에 앞서 어쩌면 교육받은 남자형제들의 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으며, 요약하자면 각각의 단체에 1기니씩 기부를 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듯하다.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채 아버지와 남자형제들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당대 여성들, 많은 딸들을 위한 교육제도인 여자대학 재건 협회에 1기니를 기부하고, 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스스로가 직접 경제적 활동을 한 대가로 정당한 수입을 창출해나가기 위한 구체적 도움의 일환으로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돕는 단체에 1기니를, 마지막으로 전쟁 방지를 위한 단체에 남은 1기니를 기여하기까지. 작가는 정치, 사회, 종교, 교육, 인습과, 관습 그리고 인간의 편견과 차별의 과정이 가지고 온 결과물들에 대해 담론을 이어간다.

 

때로는 가차없는 비판과 냉소를 보내면서도 때로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이 담긴 회유와 타협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쉽게 풀어내 써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에 대한 남녀의 사고의 인식과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에 여성이 사회 안에서가 아닌 사회 밖에서만(아웃사이더) 머물러야 했던 기존의 부조리와 인격체로서 평등한 교육을 받지 못한 부분에서 오는 몇가지 오류를 떠안은 채로, 전쟁 방지를 위한 도움을 구하는 남자형제를 비롯한 남성위주의 일방적인 사회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부분처럼 작가의 날카로운 인식과 비판은 책 전체에 가득 들어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받은 남성들의 딸들인 여성들에게 있어 이 ‘3기니’는 무척 소중한 경제적 가치의 증명이자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부하기 위해서는 타당한 이유와 설득과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는 책에 등장하는 3기니를 기부하는 것과 같은 여성들의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많은 것들을 구상하고 목표로 하며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만한 내용이다. 페미니스트 작가로서의 울프를 만날 수도 있으며, 딴은 그보다 더 포괄적으로 사회와 정치와 성을 이야기하는 작가로서의 울프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과 아들들이 나란히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금화 한 닢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 모든 남자와 여자의 권리를 확고히 하는 데에다 그 돈을 사용하십시오. 즉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정의, 평등, 자유라는 위대한 원칙을 존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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