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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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사막의 망자들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존재하는 시선들

 

하드코어 스릴러 작품으로 생각나는 유일한 작품은 오래된 고전이긴 하지만 양들의 침묵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학생시절 교수는 양들의 침묵을 분석하는 수업을 진행했었다. 한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당시 교수한테 모나게 들이대던 착하지 않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교수의 생각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온 근거 없는 당찬 고집인지 모르겠다. 시작부터 학생들 의견과 자존심을 무시하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 그녀의 아집과 소통불가의 수업 분위기가 싫었던가보다. 작품 속 한니발의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이야기했지만 그녀에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그리고는 뒷 번호의 학생들을 호명하다가 결국은 나올 것은 다 나왔다, 는 말로 프로이드의 이론과 콤플렉스의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꽈배기처럼 꼬여서 들이대기 좋아했던 나는 이미 미운털이 박힌 학생이었던가 보다.

 

당시 양들의 침묵은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분석과정을 통해 작품을 들여다보다보면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나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구도와 흐름을 알 수가 있는데 매번 그렇게 시험보듯 볼 수는 없겠지만 스릴러 작품이나 미스터리 작품을 읽어낼 때는 어느정도 깐깐한 시험감독과 같은 분석적인 시선이 필요할 때도 있어 보인다

 

마이클 코넬리의 허수아비-사막의 망자들은 어떤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작품이었다. 물론 개인의 소견이다. 하나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 않은가. 비교적 작품 초기부터 범인을 알려주는 이번 작품은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사건이 중심을 이룬다. 기본적으로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혔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이 엉뚱한 범인이 잡힌 것을 시작으로 진실을 파헤쳐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신문사 기자로 잭 매커보이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FBI 신분의 레이철이 등장한다. 신문사 기자로 나오지만 곧 쫒겨날 신세로 후배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잭 매커보이는 형식적으로 넘겨버렸던 하나의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보면 된다.

 

작품에서 범인은 개인정보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인터넷 전산망을 활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신용카드 정지라든지, 개인 메일을 삭제하거나 개인의 통장잔고를 0원으로 바꿔버리는 식의 행위가 그것인데 이는 소설을 빠져나와 현실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심각한 무게감을 안겨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해커의 이미지라든지, 해킹이라고 일컫는 일련의 일들이 작품 속에서 빠져나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 속으로 굵고 복잡한 선들을 타고 들어갈 것만 같은 상상이 이어지곤 했었다. 작품은 현대 사회를 상징하고 있는 고도로 발단된 네트워크 통신을 소재로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서, 더 나아가 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인들이 늘 어디에서든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설정은 상당히 섬뜩하다. 딴은 어디든 안전한 곳이 있을까. 가장 안정한 행동은 컴퓨터를 켜지 않는 일이라는 역설적인 생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은 어찌보면 탄탄한 구성과 서사를 가지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범인이 왜 그런 연쇄살인에 집착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미약해보인다. 물론 이 부분은 독자가 풀어가야 할 숙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유년시절의 범인이 처했던 환경만으로 성인이 되어서 연쇄살인범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에는, 그 설정이 조금은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은 뭐라고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래전 수업시간에 이야기했듯이 개인의 성장환경과 조건이라는 거대 틀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과 오이디푸스와 엘락트라 콤플렉스와 같은 심리학의 기저이론을 포함하며 출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범인의 유년시기에는 부친의 부재가 등장한다. 부친의 부재는 실질적인 폭력과 같은 조건이다. 가족을 부양할 사람의 부재는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또다른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작품은 고전적 스릴러작품이 갖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스토리를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적 양상에서 볼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기자라는 신분으로서 마이클 코넬리가 겪어왔던 경험들이 작품의 스토리를 잘 받쳐주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주는 안정감으로 작용할 듯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정한 타이틀 제목 ‘허수아비’가 지니는 여러 가지 상징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은 몰입의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같다. 책에서 허수아비는 범인을 상징한다. 새를 쫒고 벌레를 쫒는 허수아비는 작품에서 네트워크의 복잡한 전산망의 구축을 산업화하는 체계에서 불필요한 접근을 막고 안정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는 보초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그려진다. 또한 범인 역시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은 채 드러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으로 조금 바꿔 생각해보면 어떨까. 허수아비는 드넓은 벌판에서 유난히도 눈에 잘 띄는 존재감을 지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허수아비가 갖는 또다른 상징성의 매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일절하고 간만에 몰입해서 속도감 있게 읽어낸 책이어서인지 애정의 시선으로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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