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강이 말하는 강변 이야기 / 제4막 - 이병주 뉴욕 소설
이병주 지음, 이병주기념사업회 엮음 / 바이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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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강이 말하는 강변 이야기. 제 4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

 

-너무나 불쌍한 여자가 또 하나 너무나 불쌍한 여자를 보고, 아아 이 불상한 것이라고 울먹일 때, 역시 너무나 불쌍한 이 사나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싶어서였다.-238

 

소설은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동시에 슬퍼하면서 다시 기뻐하고, 늙어가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로하는 인간의 대 서사시가 바로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소설이나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허드슨강이 말하는 강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완벽하리만큼 인간적인 동시에 세속적인 인간세상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가 이병주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내가 처음 그를 알았을 때는 학생시절이었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 놀라운 것은 느낌이란 것이다. 기억과는 또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느낌.

이병주라는 이름 앞에서 순간 많은 것들이 멈춰버린 것에 대한 까닭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내용도 솔직히 눈곱만큼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 묘한 감정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다시 만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이제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신상일이라는 남자는 한국에서 사기를 당하고 그 여파로 처자식과 사별을 하고 복수를 다짐하며 자신을 나락 끝으로 몰아넣었던 사람을 쫒아 미국행을 선택한다. 일단 그의 선택은 무심했다. 복수 그리고 죽음.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 가진 것 없이 무작정 복수만을 위해 멀리 타국까지 왔으나 막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순간에 그는 검은 천사 헬렌을 만나게 된다. 밤마다 남자를 만나 몸을 팔아 돈을 벌어오는 검은 천사는, 남자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도 또 한명의 여인은 냉시 성이 등장한다.

세 명의 인물은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각자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니고 아파하던 그들은 서로 위로자 혹은 소울 메이트가 되어 서로의 곁을 지켜주게 된다.

 

사람에게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처받은 인간은 또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를 극복하고자하는 용기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여기 한 남자와 두 명의 여인의 삶을 보면서 그 말을 상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강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허드슨 강의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이 강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허드슨 강과 정신적 교류를 통해 스스로의 의지를 다잡으며 시련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작품에서 허드슨 강은 단순히 배경을 차지하는 요소가 아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는 작가 이병주의 계획된 의도 중 하나다.

작가는 인물들이 강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허드슨강의 이미지는 희망이자 사랑, 역경에 반하는 극복에 대한 멘토와 같은 존재가치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눈으로 따라가노라면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있는 힘껏 꽉 움켜잡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혹은 미련 없이 흘러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봐야 하는 의무감. 누구나 한번쯤은 이 낯설고 어설프면서도 당혹스러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나이, 혹은 국적, 성별, 인종을 떠나서 모두 동일하다. 여기에서 동일하다고 정의내리는 것은 감정을 지닌 존재로서 동일하다는 말이다. 각자의 삶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지 마지막을 향해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 않는 것 또한 동일하다. 예술가로서의 삶이든, 홈리스의 삶이든, 부유한 삶이든, 가난한 삶이든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딴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장소는 눈에 보이는 번쩍거리는 불빛이나 화려한 색채만으로는 결코 완벽하게 채울 수 없는 그들만의 색채가 담긴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인생의 4막처럼 말이다.

 

작품은 스토리가 명확하고 전개가 빠르다. 이미지나 감성 중심으로 혹은 어떤 사건만을 중심으로 쓴 작품이 아니라 탄탄한 구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때문에 스토리 전개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읽는데 속도감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에 실린 문학평론가 김종희의 글은 왜 이 시대에 다시 이병주를 논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지를 싣고 있다. 설사 김종희의 지적처럼 그러한 문제 때문에 잊고 있었던 작가를 소환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고백하건데 개인적으로 작가 이병주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 책에 대한 소심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야할 듯하다.

 

-허드슨이여! 그 모든 것을 긍정하는가, 뉴욕을 긍정하는가.

긍정한다. 그 선(善)도 그 악(惡)도, 마천루도, 시궁창도 모두 긍정한다. 록펠러센터도 긍정하고, 윌스트리트도 긍정하고, 그리니치빌리지도 긍정한다. 왜냐? 인생은 백 년을 넘지 못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 속에 못할 짓이 무엇이 있겠는가. 부정할 여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수천 년을 이렇게 흐르고 있다가 보니 드디어 허망을 알게 되었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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