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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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어떤 각성(覺醒)

 

인간은 신이 허락한 하나의 생을 살아간다. 여기에서 자의든 타의든 신의 계략이든간에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서 멈추어 설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후회와 반성으로 자신의 자리를 다독이며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싶은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의 시간과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습을 한치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인간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부류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인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비현실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부류로 나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시각에서 봤을 때, 보편적이기 보다는 비현실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정신적으로 트인 사람이고, 육체적으로는 개방적인 사람이며, 종교적으로는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나니 꽤나 뻣뻣해지는 것을 느낀다. 말투도 그렇고, 자판을 두드리는 동시에 무음으로 입속에서만 중얼거리는 이야기도 그렇고 왜이리 삐딱한가. 작품은 접근방법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는 소설이었다.

때로는 현학적인 분위기가 넘쳐나고, 때로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탐미적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아 도는 듯했다. 때문에 도대체 이 사람 오스카 와일드란 어떤 인간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 도리언 그레이, 헤리경, 바질 홀워드는 사실 모두 작가의 분신이다. 작가는 선과 악 사이에서 도리언 그레이가 되었다가 헤리경이 되기도 하고 바질 홀워드가 되기도 하면서 사람들 가까이 틈을 집요할 정도로 비집고 들어온다.

 

먼저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 도리언 그레이는 미소년으로 등장한다. 그는 선과 악의 개념을 헤리경에 의해 알아가게 되는 인물이다. 불행하게도 선보다는 악의 길로 조금더 가까이 가는 선택을 함으로써 타락한 영혼과 마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반면 헤리경은 그 성격이 다소 복잡하다. 그는 순수한 청년인 도리언에게 타락의 싹을 심어주는 악의 근원으로 등장하지만, 휘몰아치듯 급변하는 도리언이라는 인물에 비해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저 자신의 철학과 주관을 펼쳐보일뿐 다른 악의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중적인 요소를 가진 인물로 보여지기도 한다. 선한 듯 악한 인물인 동시에 악한 듯하면서도 선해보이더란 말이다. 그는 주변인물인 듯하지만 핵심적인 인물로 보이면서, 무엇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도리언 곁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며 그를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완성한 화가 바질 홀워드가 있다. 그는 선과 악 두 가지 중에서 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타락의 길로 접어든 도리언에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을 마지막까지 종용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의도치 않는 죽음을 당한다.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은 사람 도리언 대신 바질이 그려낸 초상화의 얼굴이 추하고 역겹게 변해간다는 이야기는 작품 속 작가의 말처럼 초상화 속 얼굴이 도리언 그레이의 양심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를 흘리며 교활한 모습으로 늙어가는 초상화의 얼굴과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도리언 그레이의 얼굴. 과연 도리언의 젊음은 절대적인 표상으로 남게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후회로 초상화의 얼굴을 없애버리려 하는 도리언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일까. 비교적 예측 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나름 통쾌?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불안했지만 그나마 작가가 내린 마지막 결말이 어쩐지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나르시시즘이 강하게 흘러드는 가운데 이기심과 자만심 분노와 교만,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과욕이 한 사람의 인간과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딴은 종교가 생겨난 그 이후부터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간이 신에게 의존하려는 그 까닭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신의 부속물이 아닌 인간 본연의 존재로 살아가고자했던 많은 사람들의 지난한 각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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