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평점 :
인어가 잠든 집
-산자의 도리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책은 ‘인어가 잠든 집’이었다. 분홍빛의 파스텔 빛의 겉표지에 흰 색으로 편집된 글씨체가 주는 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책은 제목에서부터 상징성이 엿보인다. 인어가 잠든 집에 등장하는 인어는 어떤 존재일까. 인어라는 단어만 들어봐도 우리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이야기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한 인어공주는 물거품으로 사라진다는 이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단순히 걷지 못하는 의미에서 두 다리가 붙어 태어난다는 인어 인간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어공주 이야기에서처럼 그 바탕에 깔린 몇가지 생각할 요소를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읽어봐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희생이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했던 비극적 결말(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 자신이 직접 원해서 선택하는 자기희생이 등장한다. 인어가 잠든 집에서 인어공주와 동일선상에서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뇌사 상태이지만 공식적인 뇌사판정을 거부한 탓에 그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딸 미즈호일까. 얼핏보면 걸을 수 없는 상태로 누워만 있으면서 기계의 힘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는 미즈호가 인어로 상징화 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작품에서 인어를 상징하는 인물은 바로 미즈호의 엄마인 가오루코라고 할 수 있다. 가오루코는 작은 희망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딸을 지켜내려고 하는 적극적이면서도 강인한 인물로 묘사된다. 모든 사람들의 불신과 외면 앞에서도 그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가오루코의 이야기의 끝을 인어공주의 이야기와 어떻게 비교하며 들여다보면 좋을까.
수영장에 빠진 딸은 의식이 없다. 의사는 뇌사 판정과 장기이식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심장이 뛰고 있기에 분명 살아있다. 그러나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에 뇌사판정을 내릴 수 있고, 장기이식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논리 앞에서 부모는 흔들린다. 작가는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뇌사의 개념이 생겼다는 의학적인 기준과 그 좁은 잣대로 인해 부딪히는 많은 의학적, 법적인 모순을 작품을 통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고발하는 듯 보인다.
누가 감히 죽음을 쉽게 인정할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말이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
작가는 책을 읽는 이들에게 죽음의 정의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내려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어려운 주제를 내민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에게는 이 주제가 풀리지 않는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올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집착을 넘어 히스테리의 성향을 보이는 이 어머니는 특별나거나 이상한 어머니가 아니다. 그녀는 보통의 아주 인간적인 어머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비이성적인 성향으로 몰아가게 된다.
여기 현실의 복잡한 상황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딸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하면서도 장기이식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가려는 한 가족을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작가는 이 어머니의 행동을 모순화시키고 있다.
모든 악조건과 싸워가며 딸을 지켜내려는 어머니와 자국내(일본) 장기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전혀 다른 입장의 인물로 바꿔 등장시키는 작가의 의도는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작품에서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판단하는 부분을 거론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모순적인 주인공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인간 본성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많은 감정선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한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한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고 했을 때, 그 이후에 이 어머니의 행동에 변화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작중 어머니라는 인물은 그 이후에도 딸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이어간다. 꿈처럼 환상처럼 그녀의 딸 미즈호가 작별을 고하고 떠나갈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과 집착은 정리되지 못한다.
인간의 생사는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감히 인간은 그 신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호흡을 관장하는 기계를 인체에 삽입해 거추장스러운 인공호흡기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신경을 인위적으로 자극해서 자의식 없이 사지를 자극해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등을 소개하는 부분은, 놀랍기도 하고 딴은 매우 자극적이기도 한 대목이다.
딴은 사랑과 집착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사랑과 집착. 이 두 가지 감정을 반듯하게 선을 그어 나눌 수 있을까. 살짝이라도 벗어날라치면 사랑이 아닌 집착이 되고 마는 불안정한 감정들의 경계를 두고 어느 현자가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작가가 말했듯이 모든 이들의 관점을 다르다는 데에서 위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말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중간자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즉 어떤 작가적 의도가 작품 안에 숨은그림처럼 깔려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히가시노 그는 끊임없이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게 하는 듯했다.
자, 이쯤해서 인어공주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바다에서 사라져버린다. 슬픈 결말이다. 인어가 잠든 집의 결말은 어떨까. 어느 한 지점에서든지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결론은 두 이야기가 같다. 운명을 거슬러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선택을 했던 두 주인공은 결국 한쪽은 물거품이 되고, 한쪽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스스로를 옥죄이던 뇌사판정을 인정하고 장기이식에 동의하게 된다. 사랑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성애라는 거대한 감성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해본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모든 종교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산자의 슬픔이 부각될 뿐이지, 정작 떠나간 이들에게는 편안과 안식이 가득하리라 이야기한다. 집요하리만큼 상처를 남긴 생과 사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 한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죽은 이를 편안하게 죽음 안에 머물게 해주는 것도 산자의 도리라는 생각 말이다.
비가 내리는 중이다. 죽음은.... 모든 죽음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