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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활 2
-모든 이들의 부활
가지고 있는 시집 중에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는 시집이 있다. 이윤학 시인의 시집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시집을 본다. 다정도 병이라 하던데, 하필이면 또 그 다정함을 찾아다닐 때, 잘 보이지 않는 건 또 무슨 서글픔인지 모르겠다. 넓은 손바닥으로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렇게 정해진 운조차 매끄럽지 못하게 삐거덕거리며 껄끄럽게 복잡한 감정들이 다가올 때면 시집을 본다. 그러면 신기하게 마음이 풀어진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고 서평을 써야하는데, 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아서 뜸을 들이는 중이다.
-현실을 긍정하십니까.
불행을 감수하시렵니까.
그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굳어 있다
그는 무표정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렇게 별일 없이 늙어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의 얼굴에는 내면의
고통이 솟아올라 굳어 있다
----겨울의 거울에 비친 창문 저편... 중. 이윤학.
부활을 읽으면서 묘하게도 이 시가 생각났었다. 현실에 대한 긍정, 불행에 대한 감수. 무표정의 굳어버린 어둠의 힘. 그리고 별일 없이 늙어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라는 시인의 고뇌가 소설 부활에서 네홀류도프 개인의 고민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시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독자는 그 안에서 시적 감흥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설 부활은 어떨까.
결과적으로 본다면 네홀류도프는 불행을 감수하고,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된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그렇게 바라는 인간의 새로운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남자 네홀류도프와 그 여자 카튜사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작가 톨스토이는 이 모든 사람들의 부활을 꿈꾸었던 것이었을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분명 그랬던 것 같다.
부활 2에서는 1의 내용과 연결되어 여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한 여자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세웠던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네홀류도프는, 기꺼이 낮은 곳으로 가기를 자처한다. 그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삶의 밑바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평등하지 못한 인간적이지 못한 처우를 받는 약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냉랭했던 허울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예수가 가난하고 헐벗은 채 핍박받는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위안을 주려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선한 사람들을 위한 법은 오히려 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억압하는 악의적 도구로 전락해버린 부조리와 모순의 사회는 딴은 소설에서나 현재에서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작가는 모순과 문제투성이의 사회를 고발하는데 그치고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참된 인간의 선한 모습을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한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그 여자 카튜사를 위해, 그녀와 함께 유형을 떠난 이들(감옥에서 알게 된 많은 힘없는 이들)을 위해 애써왔던 네홀류도프와, 그런 그의 진심과 노력에 감사하며 그의 삶을 위해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 카튜사의 깊은 속내를 통해 작가는 이미 이 두 주인공에게 부활이란 새로운 삶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작품에서 등장하는 많은 권력자들 역시 한편으로는 작가가 의미하는 부활의 삶을 얻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악한 자는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본다면 결국 작품 부활이란 모두에게 이미 준비되었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그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가졌다.
이 감정은 드디어 네홀류도프의 마음속에 출구를 찾지 못했던 사랑의 둑을 터뜨린 것만 같아 누구에게든 베풀어졌다.
이동하는 동안 내내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던 네홀류도프는 아래로는 마부며 호송병, 위로는 교도소장이며 지사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교섭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과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p256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가 남을 벌주고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p375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봐서 자신이 겸허해졌을 때만 삶의 기쁨과 평온함을 느낄수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p371
부활을 읽는 동안 나는 조금 더 심각해있었다. 책을 읽을때면 늘 그렇지만 더욱 더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 심각함을 내가 싫어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꺼이. 겸허하게. 착한 아이가 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나는 꼭 십년은 더 나이가 들어버린 듯한 기분에 젖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