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재
프랭크 매코트 지음, 김루시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안젤라의 재
-사랑과 연민의 이름으로
     
아는 지인에게 두 권의 책을 권했다. 한 권은 ‘안젤라의 재’이고, 다른 한 권은 ‘네 번째 빙하기’라는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함께, 한 사람이 온전한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는 깊이감 있는 소설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중에 한권 ‘안젤라의 재’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책은 성장소설의 성격을 갖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은 어린 소년 프랭키(프랭크 매코트, 프랜시스-애칭, 정식 이름 등 작품에서 세 가지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다)이고 네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한 소년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중간중간 웃음이 묻어난다. 어쩌면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매우 슬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성장소설의 성격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일랜드계 부모, 미국에서 출생한 소년 프랭키. 그의 가족은 미국이 직면했던 대공황과 어린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 모두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전쟁이후 대공황에 시달리던 미국보다도 더욱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여기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들어가보자. 종교와 연관하여 영국과 아일랜드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신교과 구교의 타협도 그 중 하나였을 법하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했는데 전체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다. 따라서 북 아일랜드의 6개주는 영국령에 계속 포함하는 것으로 나머지 주만 자체독립을 하게 된다. 
정리를 하자면 아일랜드가 분리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배경이 왜 필요한 걸까? 그건 분명하게도 우리의 주인공인 프랭키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 즉 북부출신(정치적 상황으로 북부출신의 차별이 심했다)의 아버지를 둔 프랭키는, 아버지의 출신성분 때문에 시작부터 좌절을 알아가야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는 돈만 생기면 술집에 가서 모든 돈을 탕진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며, 아일랜드 독립 투쟁에 참전했던 낡은 기억만을 부여잡고 잊혀진 노래만 불러댄다. 자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깨워 일렬로 세워 군가를 부르라 강요를 하고, 아일랜드를 위해 위대하고 용감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를 하며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생활비라곤 한 푼도 가져오지 않는, 생활력에 있어서는 빵점을 줄 수밖에 없는 이 아버지와, 무능력한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제발 가장 노롯을 해보라며 분노와 눈물을 쏟아내는 불쌍한 어머니. 그녀의 이름이 바로 제목에 등장하는 ‘안젤라’다. 그녀는 유산을 한 몸으로 빈민 구제소에 가서 먹을거리와 불을 피울 수 있는 석탄을 구걸해야만 했다. 갈아입을 옷도 없이 학교에 갔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잠자리에 들며, 이불도 없어 코트를 이불삼아 덥고 자야 하는 어린 프랭키와 형제들. 밑창이 닳아 구멍이 난 신발과 낡아빠진 양말은, 석탄으로 까맣게 칠해 신발처럼 보이게 하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신이 인간을 버린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버린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던 대목은 성당에서 문전박대를 세 번이나 당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릇된 온갖 차별과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가난이라는 거대한 멍에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이 가족의 모습은 안쓰럽고 또 안타깝게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공동 화장실 바로 옆에 집을 얻어서 더욱 불행하기도 하고, 어이없게도 이로 인한 슬프고도 웃긴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이 암울한 삶의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가난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있었다. 비록 가장의 역할을 포기해버린 아버지이긴 하지만, 주인공 프랭키는 성장해가면서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는 감정이 담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는 아빠 안에도 세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아침에 신문을 읽을 때의 아빠, 저녁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도드릴 때의 아빠. 그리고 나쁜 짓을 한 후 술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아일랜드를 위해 죽기를 바라는 아빠 
나는 아빠가 나쁜 짓을 할 때면 슬프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멀리할 수는 없다. 아침의 아빠가 진짜 우리 아빠이기 때문이다. -p139 
     
이를테면 어린 프랭키에게 아일랜드의 전설을 이야기해주는 다정한 모습의 아빠, 돈만 생기면 술만 먹고 빈손으로 돌아와 절망을 안겨주는 아빠, 어린 동생들이 죽어갈 때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아이는, 아빠에게 슬프지만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위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앙숙인 나라 영국으로 다른 가장들과 함께 떠나지만 가족에게 돈을 보내주지는 않았다. 소설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 프랭키의 모습을 과하지 않는 시선으로 쫒는다. 아이는 어느덧 열 살이 되고 열네살 사춘기 소년인 동시에 책임감 있는 남자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체국의 임시 직원이 되어 돈을 벌어 미국으로 갈 희망을 꿈꾸게 된다.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신념으로, 프랭키는 아버지의 부재를 책임지려하는 어린 가장의 면모를 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었을까. 프랭키의 어린 동생들이 한명 한명... 죽게 되면서 어머니 안젤라의 입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토록 신산스런 삶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삶을 견뎌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신이 외면한 것 같은 비루한 삶을 들여다보면서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프랭키의 가족과 서로 도와가며 위로하고 이해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또다른 희망의 모습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아들이 묻는다. 책이 재미있어요?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제법 두툼한 책이긴 한데,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내 아들은 안젤라의 아들 프랭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이 이야기해보고도 싶어진다.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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