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모험 - 표상문화론 강의
고바야시 야스오 지음, 이철호 옮김 / 광문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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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문화론 강의 -회화의 모험

회화의 늪에 빠지다.

 

제목부터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강조되는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진지함으로 가득하다. 책 표지 역시 무겁다. 짙은 어둠 속에서 옆모습만 살짝 드러난 채 앉아 있는 여인과 일렁이는 촛불 그리고 오직 이 하나의 초를 반사하는 거울의 이미지는 사뭇 강렬하다.

 

책을 읽다보면 각자의 책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혹은 진지하거나 과하게 질척이거나하는 등의 분위기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까닭은,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에 온전하게 몰입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나서 쓰게 되는 글은 대부분 책이 갖는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는 걸 느끼게 된다.

딱딱한 논설문이나 기사문을 읽고 난후에 쓰게 되는 글은 역시나 딱딱하고 따분하기 그지 없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쓰는 글은 마찬가지로 술술 잘 써지고 읽기에도 꺾임이 없다. 그렇다면 고바야시 야스오 교수의 책인 이 ‘회화의 모험’을 읽고 나서 쓰고 있는 내 글은 어떤 글이 되는 걸까?

 

책은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책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한번쯤은 이런 책도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도 맞다는 생각을 한다.

앞서서 나는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우연하게도 회화와 미술을 논하고 있는 이번 책 속에서 먼저 읽었던 철학적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바로 ‘오컴의 면도날’에 관한 이론이었다. 책 속에는 지루할 정도로 많은 철학적 내지는 과학적 이론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지루하다는,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어서 오독이 없기를 바라지만 사실 책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투명의 막을 지니고 있는 듯도 하다.

 

어떤 이유로 이번 책이 이토록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던 것일까. 투명의 막은 결코 녹녹하지 않은 단단한 막이었음을 기록한다. 왜였을까.

우선 언어 선택, 그리고 번역투의 깔끔하지 못한 문장표현도 읽기에 거슬렸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딴지를 걸자면 이런 부분들이었다. 언어 선택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표현도 많았고 각주를 달지 않은 채 회화에서 쓰이는 외래용어가 많이 등장했다. 어쩌면 저자의 설명이 너무 난해한 까닭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새롭게 사전을 찾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는, 은, 서, 써, 표현들로 이루어지는 문장들은 가뜩이나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을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이 책을 끝까지 잡고 있었다. 시쳇말로 던져버리지 않고 버텼다.

때때로 늘어지던 회유에도 불구하고 책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해석에 의한 작품분석, 물론 작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간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끌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간간이 보아왔던 작품들을 향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이 궁금해서였던 까닭이기도 하다.

 

회화, 우리는 보통 이 회화를 쉽게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 이제 이 기나긴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책을 요약 정리해 볼 수 있을까. 회화의 역사도 정말 말 그대로 화려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번 책은 회화에 대한 역사서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책은 회화의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시작부터 각각의 표상으로 대표되는 회화(그림)가 스스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투시도법이나 수리와 관련한 회화, 후반부에 나오는 광학과 연계해서 사진기술을 언급하기까지 책은 철학, 수학(대칭과 비대칭, 비율),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기저에 깔고 일어선 예술이 바로 회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게는 특히나 어렵게 다가왔던 마니에리즘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바로크 회화에서 등장하는 독특함은 낯설지만 분명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귀퉁이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림에 있어서 형식과 제도는 그냥 눈에 보이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

이 또한 딴지 같지 않은 딴지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회화의 처음부터 중세 기독교 예술과, 세기별로 나누어지는 예술(회화) 사조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작가와 대표작을 소개하며 비교 분석하고 있다. 덕분에 난해한 현대미술과 초현실주의 회화까지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셈이다.

이번 책이 대학원생과 학생들을 위한 강의서를 위한 책으로 출발했다는 해설문을 접하지 않고서라도, 전문성이 농후한지라 어느정도 예측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일반 독자들을 위해 조금 더 쉬운 해설과 표현으로 구성된 책으로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소심한 욕심을 남겨본다.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법이니까.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적는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며...

 

-예술의 역사는 결코 단편적인 사고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 많은 회귀나 연결 고리에 의해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는 것, 또한 예술 작품은 반드시 ‘다가와야 할 시기’를 위해서 열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잊어서는 안 됩니다.-

 

p162. 윤곽보다는 진동 편, 표상문화론 강의 회화의 모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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