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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 정답 없는 질문에 나만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단단한 식견을 위한 인문 사 ㅣ 인문 사고
최원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8년 6월
평점 :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밝은 회색 어두운 회색, 어느 쪽?
최원석의 ‘그 질문에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를 드디어 다 읽었다. ‘드디어’ 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책은 묘한 매력이 숨겨져 있다고 해야 할까. 마치 롱런타임의 영화 한편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극장에서의 고군분투는 (단순하게 앉아서 보는 행위로 정의 내릴만큼의 그렇게 )쉬운 일만은 결코 아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여러 가지 신체적 불편함을 호소하기 마련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기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불편함을 얼마나 잘 감수해내는가가 관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때로는 졸기도 하고, 때로는 화면에 집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옆 사람의 얼굴을 한번 흘깃 쳐다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켜 놓은 핸드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면서 동시에 롱런타임을 즐기는 것이다.
이제 책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책을 읽으면서 나는 롱런타임의 영화 한편을 보는듯한 생각을 하곤 했다. 각각의 주제가 다른 연속된 단막극 같은 이미지다. 책에 대한 호불호야 개개인의 시선과 경험에 따라 다른 건 명확한 논리겠지만, 어쨌든 이 책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유를 떠나서 인문, 사회, 과학의 편집된 백과사전처럼 다가온 것 역시 사실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진다. 많은 이야기. 그런데 이 많은 이야기들이 과연 적절한 예로 적합하고 알맞은 자리에 배치되어있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싶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회색인간을 거론하면서 흑백논리에서 벗어난 중간지대를 이야기한다. 흰색과 검정색의 혼합은 회색이다, 라고 했을 때 회색은 그리 낯선 색은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곳. 그들 모두의 교류가 있는 이 거대하고 복잡하며 때로는 안전함 뒤에 숨어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어렵기 짝이 없는 지금의 이 공간을 저자는 간단명료하게 ‘회색지대’화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런 시선이 한없이 낯선 태도라고 보여진다. 색채의 배합이 가져오는 혼합된 색인 회색이라는 특수성을 빗대어, 특수한 지역 내지는 특수한 중간자 입장의 사고를 갖고 있는 이들을 회색인간이라 부르는 저자의 표현이 다소 받아들이기에 무겁게 느껴졌다면 지나친 감상적 반응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침 없는 것. 극과 극으로 치닫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는 늘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사유하고 펼쳐감에 있어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논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논거를 뒷받침해주는 목적의 정말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제시하고 있다. 내 기억이 그다지 썩 좋은 편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음악이나 미술계열의 자료를 제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자료를 찾아 싣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어쨌든 열정과 수고로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극단에 휩쓸리지 않고 ‘중간’에 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떤 논리라도 들을 준비가 돼 있는 아량과 배려심 말이다.- p.9
저자의 이 표현에서 나는 오래전 읽었던 칼 포퍼의 이론을 상기했었다. 열린 사고, 기존의 사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언제든 바뀌고 달라질 수 있으며, 진정한 학자라고 한다면 이를 수용하는데 일만의 주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이야기는 극단으로 치닫는 인간의 아집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을 그려가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러한 열린 사상과 수용의 정신 속에서 회색인간의 이미지를 찾는 것은 좀 어려워 보인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비겁하게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회색인간의 이미지는 밝은 회색인가. 아니면 어두운 회색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사카린에 대한 이야기, DDT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책에서 소개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대중에게 소개되었는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저자도 대중성 보다는 감춰지고 이는 까닭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사고의 변혁 같은 것 말이다. 하나의 정의는 결코 시대상과 동떨어져 살펴볼 수 없는 문제인데, 시대가 변하고 인식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지면 그 시대상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데 핵심이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NO. 했던 것이 이제는 YES. 로 바뀌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바라본 마시멜로 실험은 흥미로웠다. 사실은 처음 실험을 토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험이 더 몰입도가 높았고 객관적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물론 아쉽게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에 대한 일화는 그동안에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미국의 노예해방에 대한 이미지에 살짝 데미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링컨이 당시에 몸담고 있었던 공화당이 지금의 공화당과 조금은 다른 입장이라는 것,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 노예해방에서부터 시작된 호기심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검색하는데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다양한 사료가 주는 읽는 즐거움을 뒤로 하고, 일정부분 작가가 설정한 주제와 예로 든 사료가 작가의 논거를 완벽하게 잘 뒷받침해주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사견이지만 말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작은 틀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주제씩 따로따로 떼어서 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회색인간, 혹은 회색지대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고의 이전과 행동의 역동성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받쳐주고 있는가는 더 생각해보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쉽게 읽으면 쉽고, 어렵게 읽으면 어려운 책이다.
부수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