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점심을 먹으러 공장 대문을 잠그고 나왔는데 최부장님이 울타리 건너 갈대밭서 뭔 풀을 뜯어 씹어잣고 계신다 저기 대체 뭐 뜯어먹고 자시고 할 게 있는가 싶언 차에, 얘기 듣고 내가 바로 알아채니 찔레꽃순이다 정부장님은 그게 찔레꽃이었냐며 자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게 먼젓번에 자꾸 울타리 넘어오는 잡풀들 쳐낼 제 찔레꽃나무 줄기를 보고는 나도 정부장님도 대강 이름모를 까시나무겠거니 궁시렁차 뭐이리 많냐며 낫질하기에만 바빴어라 둘 다 서로 몰랐던 거다 그래도 나는 찔레꽃순 먹어는 봤다 이르니 정부장님은 시골서 자란 자기도 못먹어본 걸 네는 어찌 먹어봤냐 놀란치다 다 들어엎고 아파트 재개발 들어서 지금은 한참도 전에 없어지닌 천안 백석동 옛날 공동묘지에 할아버지 묫자리였는데, 공교롭게 할아버지 봉분 뒤가 다른 봉분줄이 아니라 풀숲 우거진 곳이어서, 근데 하필 거기에 찔레꽃 줄기가 갈 적마다는 무장 되 우거져서, 성묘 간 날마다 돗자리 깔아 아빠가 술 한잔 뿌리고 나면 시아버지 얼굴은 뵌적도 없어놔 심심하던 차 엄매는 늘상 그 순 따다 이게 찔레꽃이라며 연녹색 줄기껍데기 피르르 까줘 먹어보았다, 그래서 먹어보았다, 얘길 풀었다 이십 년을 건넌 세월에 최부장님한테 받아 까서 먹어본 맛짜기가 첫혀엔 달다가 이내 목젖찌 안쪽이 시고 썼다

2. 딱 십 년 전 그날 학교 끝나고 와보니 아무 없는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끄고 나서 씻고 나와보니 또 켜져있길래 또 껐다 그러자 엄매는 할아버지 오셔 앉아 켜놓았다고, 죄 어둔 데만 드러눕다 오셨는데 왜 자꾸 불 끄지를 말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화장대 위는 웬 흰 보따리 쌓인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한창 취해 검은 봄밤 검은 낯으로 비칠비칠 들어온 아빠는 나랑 누나를 불러놓고는 많은 얘길 쑤어렸다 오늘 파낸 늬들 할아버지 묫자리 휑그렁한 구덩 앞에서 혼자 쏘주를 세 병이나 넘겼다고, 소형굴삭기 그 대가리가 한 번 떨구럭져 파낼 적마다 그냥 보고만 있질 못하겠더라고, 한 달 전부터 전화해놨던 영선이놈새끼는 기어코 코빼기도 안보였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부모 묘지에 괸 물이 많으면 그게 그렇게 세상 큰 불효인데 금일 파내고 난 자리가 어찌나 그렁 흥건하더라고, 늬들은 내일에는 적어도 오늘보단 낫게 살아야 한다고ㅡ다음 날 아버지는 봄날 아침 동트는 빛따라 혼자 그 쌔하야니 골분보따리 품쳐 안은 채 말가니 해떠오른 동쪽엘 달려 영월에 다녀오셨다 열 시간 전이든 열흘 전이든 십년 전이든 그적보다 지금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낫게 살고 있는지, 십 년 전도 몰랐을 거고 지난 사월 십팔일도 몰랐을 거고 지금도 모르겠다

3. 점심으로 나온 국이 청국장이었다 정부장님은 너 청국장 먹냐며 안 좋아하지 않냐며 시름해준다 고리짝부터 어머니 끓여준 청국장 잘 먹고 이게 자랐으니 걱정 말라 뒀다 한 숟갈 떠서 먹으며 떠오르기가, 그 옛날 늦봄마직 할아버지 묘지 뒤편에 봤던 찔레꽃이 참 엄마를 닮았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가봤댄들 아파트 단지들만 즐비해진 그 녯날 공동묘지자리, 짐 가면 전에 눴던 할아버지도 없고 엄마 치마폭 닮은 쌔하양 찔레꽃잎도 없고 아빠 마셨던 녹디진 쏘주병 세 병일랑 어디 저 밑땅 축축진 데 다 묻혀놔 간 데가 없을거라ㅡ

4. 인생질 신맛이나 쓴맛은 의당 고사하고 이적지 단맛도 혀대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더니, 엄매는 딱 보길 못난 이새끼는 삼십 줄도 넘어서까리 인생 맛들랑 그적지나 여태 모르고 있을 개싹이구나 싶었는가보다 그래 봄날 햇따라 시아버니 성묘갈 적마다 찔레꽃순 두어줄기씩이나마 따내어 까 자식년놈들 아갈찌에 물려두는 게 일이었는가보다

그적 아직 부드러우시던 손마디골들 죄 까시에 찔려가며 찔레꽃순 따줄 일이었는가보다

- 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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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 및 존재론 연습:

1. 쇼펜하우어는 개를 하나 샀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 하나가 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개이다 & x는 쇼펜하우어에 의해 구매되었다)

2. ‘x‘에 대입될 논항의 지시체에 대한 지식은 이 문장들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에는 맥락상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가 붙는바, 그 표현은 외견상의 문법적 형식으로는 명사이지만 논리적, 의미론적으로는 불포화된 술어, ‘그러한 ...가 존재한다‘라는 2계함수 양화사의 논항이 되는 1계함수이다

3. 동일성 기준 없이는 존재(대상)도 없다 역으로 대상의 존재함은 그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함축한다ㅡ콰인은 제쳐두더라도, 프레게는 여기서 자칫 실수해버린 것 같다 술어의 외연 동일성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술어의 외연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문제는 분명 다르다 콰인은 존재론적 개입기준의 토대로서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이 간극을 해결하지만, 프레게에게는 그러한 철학적 마지노선이 없다(탁월한 프레게 전도사이자 명민한 쌈닭인 m. 더밋은 이 간극을,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론을 세련화하여 빌려온 뒤, 그것을 직관주의의 근본기조에 맛깔나게 버무려, 내재적인 반실재론적 구성성 논제를 통해 해결한다 재수없는 스타일의 천재다) 수학에 대한 심리주의를 그렇게도 날카롭게 배격한 그가, 술어의 외연이라는 개념ㅡ어쩌면 포르-르와얄 논리학 시대부터 굳건하게 이어져왔을지 모를 그 낡아빠그러진 개념ㅡ에만 그렇게도 쉽게 의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식론과 형이상학 모두를 다 피하고 싶었던 몬테규는 수학과 언어학을 통해 그 간극을 그냥 지워버렸다 교묘한 살쾡이 스타일의 천재다)

사족. 쇼펜하우어가 홀애비로 늙어 죽을 때까지 애착을 갖고 기르던 개는 푸들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가 기르던 ‘x‘에 대입될 현실세계에서의 논항이 푸들인지 진돗개인지 파트라슈인지, 그 종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명확히는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 개가 그 개겠거니 동일성이고 함수고 술어의 외연이고 나발이고 암거도 모르겠다 인간을 그리도 싫어한 쇼펜할부지가 개를 키웠을진대, 인간도 개도 벌레도 신도 싫은 나는 그냥 내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를 2계 술어논리 형식을 빌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x와 S에 대해 (x는 시공간적으로 내 주변에 사태 S를 예화시킨다-> 나는 x와 S를 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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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생전이실 적 엄매한테 전화오면 내뱉으시는 첫마디가 이년아 살었냐 죽었냐 왜 연락을 안허냐였다 할머니 소천하신 뒤론 그 바톤을 막내이모가 넘겨받았는지 매주말 저녁마다 걸려오는 전활 받고 난 엄마는 종단이년은 왜 전활안허냐고 맨날 지랄이랜다 살아숨쉬느라 바빠 벙긋핀 꽃들 떨어져가는 봄밤 엄매가 할머닐 생각하면 나는 엄매가 끓여주는 미역국 냄비에 비친 얼굴을 생각한다

- 2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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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매기를 빌려 모래밭에 앉았다

외로움이 저 사람의 형상을 잠시 빌렸구나

그곳에서 나는 어두워지는가

- 김행숙,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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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꿈을 꿨는데,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아버지 당신 넷이서, 따뜻한 모래밭에 전부 깨벗고 앉아 서로 막 모래장난질을 하던 꿈이었다고 한다 그 광경이 너무 좋고 애틋해서, 꿈에서도 펑펑 울었고 깨어서도 보니 펑펑 울고 있었더랜다 그러고 나니 잠이 오질 않아 전활 한 거였다 얘길 들어보면 누나한테도 전화했는데 누나는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으니 로또를 사라 했단다 아빠는 나랑 통화한 뒤로 로또는 제쳐두고 옛날 일기장을 들춰보았는지 몇 십 분 있다가 할아버지 돌아가시던 즈음에 쓴 일기들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납품할 물건들을 정리하다 말고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향년 49세, 아빠 일기장에 쓰인 대로 ‘시간이 휘두르는 낫‘에 할아버지 명숨은 너무도 일찍 버히었다 하는 사업마다 허탕을 치곤 했던 할아버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끊기기가 일쑤였던 할아버지, 어쩌다 영월에 돌아오시면 술이나 한 잔 하시고 곯아떨어지셨다던 할아버지, 글씨는 아빠처럼 멋져서 마을에서 공문서 같은 것 대필해주곤 하셨다던 할아버지, 나어린 시절 아빠가 할아버지 따라 장에 다녀오다가 세발자전거 보고는 저거 타보고 싶다 하면, 한 번 타보라 하시고는 가게 마당 휭 한 번 돌면은 ‘이제 타봤으니 가자‘ 하시곤 아빠 손을 잡고 그대로 집으로 오셨다던 할아버지ㅡ그런 아버지여도 아빠는 자기 아버지가 좋았다던 할아버지였다 열너덧 나이에 상경했던 아빠가 청계천 우주표가방에서 점원으로 일할 제 약값 하시라고 6만 원을 보낸 게 오월 칠일인데, 할아버지는 그 약값을 써보지도 못하고 이틀 뒤 구일에 명을 달리하셨다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없이, 하나 있는 남동생은 먼 타국 싸우디에 가 있는 채로, 부엌 바닥에서 혼자 식어갔을 할아버지가 당신은 그렇게 가엾고 서럽고 죄스럽다고 일기장에 쓰여있다 그렇게 영월 연당서 아득바득 살다 흩어졌던 네 식구가 꿈에라도 따뜻한 모래밭에 다시 모여 앉았으니, 아빠는 얼마나 기쁘고 슬프고 한스럽고 가슴이 북받쳤을까 소천하신 날자로 한달이 지난 초여름 유월, 벌써부터도 이리 더운데 할아버지는 어디서 머릴 뉘이고 계실까 거기가 어디든, 촉촉한 바람 기분 좋게 부는 대추나무 한 그루 아래서, 증조할머니랑 마주 앉아 시원한 메밀막국수라도 한 그릇씩 말아드시고 계시면, 아빠도 할아버지도 참 좋을 거 같다

출근하자마자 가공기는 부장님이 혼자 돌린다 하여 나는 납품이 급한 것부터 검수하러 중앙창고로 갔다 아빠 카톡에 일기장을 읽던 때는 아무렇지 않던 것이, 박스들 들고 와 앉아 검수를 하기 시작하자 별안간 눈물이 막 났다 추스리고 검수하려는데도 자꾸 울음이 나서, 검수품에 떨어진 눈물을 자꾸 닦았다

- 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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