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철학 및 존재론 연습:

1. 쇼펜하우어는 개를 하나 샀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 하나가 있다
그러한 x가 존재한다 (x는 개이다 & x는 쇼펜하우어에 의해 구매되었다)

2. ‘x‘에 대입될 논항의 지시체에 대한 지식은 이 문장들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가 산 개‘에는 맥락상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가 붙는바, 그 표현은 외견상의 문법적 형식으로는 명사이지만 논리적, 의미론적으로는 불포화된 술어, ‘그러한 ...가 존재한다‘라는 2계함수 양화사의 논항이 되는 1계함수이다

3. 동일성 기준 없이는 존재(대상)도 없다 역으로 대상의 존재함은 그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함축한다ㅡ콰인은 제쳐두더라도, 프레게는 여기서 자칫 실수해버린 것 같다 술어의 외연 동일성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술어의 외연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문제는 분명 다르다 콰인은 존재론적 개입기준의 토대로서 자연과학을 받아들여 이 간극을 해결하지만, 프레게에게는 그러한 철학적 마지노선이 없다(탁월한 프레게 전도사이자 명민한 쌈닭인 m. 더밋은 이 간극을,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론을 세련화하여 빌려온 뒤, 그것을 직관주의의 근본기조에 맛깔나게 버무려, 내재적인 반실재론적 구성성 논제를 통해 해결한다 재수없는 스타일의 천재다) 수학에 대한 심리주의를 그렇게도 날카롭게 배격한 그가, 술어의 외연이라는 개념ㅡ어쩌면 포르-르와얄 논리학 시대부터 굳건하게 이어져왔을지 모를 그 낡아빠그러진 개념ㅡ에만 그렇게도 쉽게 의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식론과 형이상학 모두를 다 피하고 싶었던 몬테규는 수학과 언어학을 통해 그 간극을 그냥 지워버렸다 교묘한 살쾡이 스타일의 천재다)

사족. 쇼펜하우어가 홀애비로 늙어 죽을 때까지 애착을 갖고 기르던 개는 푸들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가 기르던 ‘x‘에 대입될 현실세계에서의 논항이 푸들인지 진돗개인지 파트라슈인지, 그 종에 대한 동일성 기준을 명확히는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 개가 그 개겠거니 동일성이고 함수고 술어의 외연이고 나발이고 암거도 모르겠다 인간을 그리도 싫어한 쇼펜할부지가 개를 키웠을진대, 인간도 개도 벌레도 신도 싫은 나는 그냥 내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를 2계 술어논리 형식을 빌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x와 S에 대해 (x는 시공간적으로 내 주변에 사태 S를 예화시킨다-> 나는 x와 S를 혐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