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철학 - 배중률에 대한 철학적 반성 건지학술총서 2
양은석 지음 /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이 어렵지도 않고 무턱대고 평이하지도 않지만, 주제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그에 강하게 관심하는 사람에게 한번쯤 읽어보라 권해볼 만한 책인 반면, 책의 구성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독자층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제목은 ˝논리철학-배중률에 대한 철학적 반성˝인데, 배중률의 지위에 관한 현대의 철학적 논의가 수학철학 및 언어철학 분야와도 밀접히 연관되다보니, 그 분야에 대한 내용의 비중도 꽤나 높은 편이다 그런데 기초적인 개념, 논제 등이 상세한 설명 없이 논의에 바로바로 등장하거나 원용되기에, 적어도 논리주의, 직관주의,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후기철학 등에 대한 선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수월하게 읽어내기 어려울 듯하다 반면 기초가 다소 다져져 있다면, 지엽적인 사항에 매몰되지 않고 배중률과 얽힌 논의의 흐름에만 오히려 집중할 수 있겠으니, 배중률의 논리철학적 지위에 관해 의문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읽는 소득이 있을 것이다
지적하고픈 단점은 책의 구성이다 저자가 발표해온 복수의 글들을 추려서 단행본으로 꾸린 듯한데, 그래서인지 모든 장들을 통틀어 일이관지하는 논지가 없다고 느껴졌다 특히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다뤄지는 1부 두 개의 장과, 비트겐슈타인 후기철학에서 초일관성의 실마리가 논구되는 7장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내용 자체가 저자의 관점이나 논증을 제시한다거나 혹은 주제를 저자의 언어로 정리 및 해설하는 게 아니라, 여타 군소 학자들의 논문을 끌어들여 간략히 확인 및 논평하는 식이어서,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렵고 읽기도 지루했다 일반적인 독자층보다는 해당 주제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에게나 읽는 의의가 있을 법하다

개인적으로는 자데라는 인물이 대안논리로 제시한 퍼지논리(fuzzy logic)를 8장에서 처음 접해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다소 간략하고 형식화된 채로 제시되기에 깊이 있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2가원리를 받아들이는 고전논리로는 포착되지 않는바 자연언어에서 인간 사고와 추론이 드러내는 모호성을, 고전논리와는 다른 철학적 근거에 기대어 형식화하고자 한 것이, 퍼지논리를 비롯한 여러 대안논리의 핵심 기조였다는 철학적 사안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겐 적잖은 소득이었다 기초적인 논리학 및 논리학사를 더 숙달한 뒤, 동 저자의 여타 저서인 ˝논리와 구조˝를 통해 더 심화시켜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쟁이의 역설
야마오카 에쓰로 지음, 안소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평이하게 읽히면서도 전문적인 사항을 얻어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교양서이다. 우선 해당 주제에 선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끈기있게 붙든다면 읽어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 쓰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논리학, 논리철학, 언어철학(및 화용론)적인 사항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형식적이고 테크니컬한 언어보다는 자연언어로 최대한 쉽게 풀어쓰고자 기도한 원저자의 노력이 많이 드러난다. 이렇듯 평이하게 서술되었으면서도 역설과 관련된 이론, 논제, 개념 등을 입문 수준으로 접해볼 수 있으니, 학술적인 면에서도 분명 소득이 있다. 역자가 철학계 종사자가 아니어서 읽기 전에 살짝 걱정했으나, 막상 읽고 보니 언어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크게 문제될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근데 후자의 경우는 원서 자체가 교양서인 탓일 수도 있겠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각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해결법을 최대한 쉽고 간명하게 소개하려다 보니, 읽는 이에 따라서는 조금 아쉽거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10, 12, 13장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내가 생각하기엔 이 책에 소개된 이론들 중 가장 형식적인 이론들이 다뤄지는 장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본디 해당 주제에 관심해왔거나 이 책을 읽고 흥미를 강하게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책만으로 끝나는 독서가 될 가능성은 적다. 동일한 주제를 더욱 심도있게 다루는 전문서로서 송하석. "거짓말쟁이 역설에 관한 탐구"가 출간되어 있으니, 마저 해결되지 않는 부족함이나 궁금증을 느껴 심화된 내용을 원한다면 이 책으로 입문한 뒤 송하석의 저서를 독파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뤄지는 인물들도 일부 겹치는바 타르스키나 러셀 같은 고전적인 인물들부터, 크립키, 스트로슨, 마티니치, 프리스트, 시먼스, 야블로, 소렌센 등 비교적 최근의 인물들이나 생소한 인물들의 이론 역시 송하석의 책에서 다뤄진다. 일전에 그 책을 읽었다가 너무 어려워서 거의 건성으로 훑어버리고 말았는데, 차제에 나도 이 책을 발판삼아 그 책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책 한 권을 읽으면 외려 과제가 생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2-11-0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 책에서 거짓말쟁이의 역설 원인인 self-reference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고 구체적인지요?^^

depaysment 2022-11-02 22:21   좋아요 1 | URL
헐 아 네 안녕하세요 감사핮니다 ㅋㅋㅋ

depaysment 2022-11-02 22:35   좋아요 1 | URL
아 자기언급성이요? 어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ㅎㅎ 14장 한 장을 자기언급성에 할애해서 그것이 역설이 성립하는 데 대한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여부가 논의되고 있고, 러셀이나 타르스키 이론이 다뤄지는 1, 2장이나 러셀의 집합론 역설을 다루는 부록1에서도 러셀의 악순환원리라든가 비-가술적 술어 개념 등과 더불어 자기언급성 개념이 환기되고 있고, 화용론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인물들이 다뤄지는 장에서도 ‘내 명령을 따르지 마라‘와 같은 식의 자기언급적 발화행위가 과연 진정한 발화행위로서 성립하는지 살펴보는 등, 분명 자기언급성 개념을 다각도로 조망해주고 있긴 합니다. 그래서 자기언급성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그게 왜 문젯거리인가 등에 대한 논의를 입문 수준에서 접하게 해주는 데는 충분한 거 같습니다. 근데 본글에서 썼듯이 모든 논의들이 최대한 간결하고 평이하게 해설되어 있어서, 아주아주 상세한 논의를 원하신다면 이 책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실 거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11-03 17:49   좋아요 1 | URL
긴 답글 감사합니다. ^^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ㅎㅎ

depaysment 2022-11-03 18:40   좋아요 1 | URL
네네 감사감사ㅏ!@#

북다이제스터 2022-11-03 19:22   좋아요 1 | URL
자기 지시성 문제가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맞다있고 그에 따라 세상은 필연성이 아닌 우발성으로 움직이며, 그래서 인간 자유의지 여부와 연관되어 여쭤봤습니다. ^^
요즘 제 관심 사라서요. ㅎㅎ
감사합니다. ^^

depaysment 2022-11-03 19:46   좋아요 1 | URL
아아 그렇군요 많이 어려운 주제인데다, 논라학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에도 닿아있네요 화틩화틩!!
 
현대 언어철학
윌리엄 G. 라이컨 지음, 서상복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는 "언어철학: 현대적 입문"이지만, 입문자에게는 분명 추천할만하지 않은 책이다. 영국의 Gary Kemp라는 사람은 자신의 저서 "What Is This Thing Called Philosophy of Language?"의 서문에서 이 책을 이렇게 촌평했다: "이 책과 비슷한 수준의 저서로서 William Lycan언어철학: 현대적 입문Philosophy of Language: A Contemporary Introduction(Routledge, 2, 2008)을 들 수 있겠다. 분명 뛰어난 교재이긴 하지만, 그 책과 나의 책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큰 차이점이 있다: Lycan 의 책은 주제별로 구성되어있다보니 해당 주제와 얽힌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과 각종 주의(主義)ism, 철학적 문제들, 그 해결책과 반론들 전부가 압축적이고 빠르게 제시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해당 주제에 이미 충분히 숙달해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논의에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학생들에게나 효력이 있을 뿐 초심자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내가 느꼈던 바의 핵심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 장이나 절에서 다뤄지는 주요 주제나 논제에 대해 특정 입론들과 반론들, 그에 대한 재반론, 원저자 나름의 해결방안 등이 빠른 호흡으로 압축적이게 제시되다 보니, 기초적인 개념조자 모르는 언어철학의 초보자는 논의의 흐름을 잡기 매우 어려울 듯하다. 각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주장을 통괄하여 충분히 조감해주지 않은 채 필요나 맥락에 따라서만 산발적, 부분적으로 논의에 삽입시키는 서술방식 역시, 초심자는 물론이요 언어철학을 다소 아는 독자에게도 읽는 어려움을 가중한다.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은 원저자가 각주로 달아놓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많은 서지사항들이다. 'A는 자신의 저서 b1에서 여차여차를 주장했는데, B는 b2에서 b1의 저차저차한 부분을 문제삼았고, 이에 C가 b3에서 여차저차를 모색함에 따라 D는 (…)' 이런 식의 정보들이 자주 제시되는데, A ~ D 등의 인물과 그 저술들의 내용은 본문에서 상세하게 논구된 적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각주에서도 간략하게나마 부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무척 뜬금없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학계활동을 업으로 삼는 정도의 전문가들에게나 도움이 될 법한 간략한 방향제시일 뿐, 입문자는 고사하고 철학에 관심하는 일반 독자층에게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적 정보의 나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다소 강하게 말하자면 입문자들에게는 수준이 높아 읽히기 어렵고, 숙달된 일반 독자층에게는 필요한 부분을 메워줄 만큼 친절하지는 않아 역시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면 이 책보다는 여기서 제시되는 다양한 1차문헌들을 이미 독파하느라 바쁠 터이니 이 책을 읽을 리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의 지도나 강의를 받으면서 활용할 요량이 아닌 바에야 혼자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쌩 입문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로는 이병덕의 "쉽게 읽는 언어철학"을, 다소 숙달된 철학서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로는 맥긴의 "언어철학"을, 영어에 부담이 덜한 사람이라면 초두에 언급한 켐프의 저서를 각각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에 관해 생각하기 - 수학 철학
Stewart Shapiro 지음, 이기돈 옮김 / 교우사(교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짝 아쉬운 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수학철학 전문교재이다. 4부 구성으로 각 부마다 수학철학적 논점들과 예비사항, 현대 이전의 수학철학사,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고전적인 수학철학, 동시대의 관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각 이론이나 관점의 핵심을 명료하게 정리 및 해설하고, 종종 1차문헌을 인용하면서 저자 나름의 해석이나 평가를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 제시하며, 적절한 대목에서는 논의되는 이론에 제기될 법한 다소 공인된 비판점,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 등을 제언하기도 하는 등, 실속있는 내용들을 깔끔한 형식을 갖춰 전달하고 있는바 정통적이고 견실한 수학철학 교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야가 워낙 전문적이고 어려운 탓이라 수학철학은 고사하고 수학과 철학 양자에 완연 문외한인 초보자가 무턱대고 입문서로 읽기엔 조금 벅찰 듯하면서도, 이 분야에 강한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야 끈질기게 붙들다 보면 나름 읽어나갈 수도 있는 정도의 난이도이다. 대략 비슷한 분량과 성격의 책으로 S. 쾨르너의 "수학철학"이 번역되어 있는데, 난이도와 질적인 면에서 그 책보다 읽기 수월하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대두된 비교적 동시대의 관점도 소개하고 있기에 거진 60년 전에 저술된 쾨르너의 책에 비해 양적인 측면에서도 읽는 소득이 많다는 점에서, 그 책보다 훨씬 추천될 법하다. (재미있는 점은 쾨르너 책의 역자 최원배가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서 비교적 최근의 수학철학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이 책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쾨르너의 책을 처음 읽을 적엔 눈에 두질 않았는데, 이제사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언급될 법한 좋은 책이었던 셈이다) 이 책으로 입문한 뒤 쾨르너의 책으로 심화시키는 것도 괜찮겠다. (나도 그 책을 찬찬히 재독해보아야겠다)


 번역에는 아쉬움과 만족스러움이 공존한다. 분명 직역투로 번역된 듯한데도, 직역된 철학서들이 으레 보여주는 바와는 달리 형편없고 성실하지 않은 스타일의 직역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하여 집중하며 읽었다기보다는 평소 독서하는 속도대로 편히 읽어나갔는데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원서가 원체 지닌 탁월함에, 좋은 책을 소개하려는 역자의 노력이 더해졌기에, 직역투인데도 읽을 만한 물건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으로는, 역자가 순수 수학계에만 종사해온 학자여서 그런지 철학계의 번역용례에 대한 참고가 부족한 듯한 역어선택이 간혹 눈에 띈다는 점이다. 콰인의  전체론적 관점을 특징짓는 데에 으레 쓰이는 'holistic'을 '전일적'으로 번역한다든가, 논증의 순환성이 논의되는 맥락에서 'regress'를 '퇴행'이 아니라 '회귀'로, 양상성 개념이 연루된 맥락에서 'possibly'를 '가능적으로'가 아니라 '아마도'로, 논리학 내지 형식언어에 대한 논의에서 말해지는 'domain of discourse'를 으레통용되는 '논의영역'이 아니라 '담화의 영역'으로 번역하는 식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reference'를 '참조'로 번역한 것이었다. 수학철학이 인식론, 형이상학, 논리학, 언어철학 등의 이론철학 분야와 밀접하기에, 책 전반에 걸쳐 'reference'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참조'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처음 보았을 때에는 맥락상 'reference'의 역어인 듯한데, 괄호 안에 영단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았다. 혹여 잘못된 추측일까 싶었지만, 307쪽에 가서야 원단어가 'reference'임을 알 수 있었다. 언어철학에서의 지시론적 의미론 및 지시개념의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의의를 정확히 숙지하고 있다면 이 단어를 결코 '참조'로 번역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굳이 이런 전문적인 사안을 떠나서라도, 가령 "철학자는 수학명제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참조를 포함하지 않도록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34쪽)와 같은 문장을 입문자가 읽을 경우, '어떤 명재가 어떤 대상을 참조한다'는 말이 도시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일상언어에서 '참조'라는 단어의 쓰임새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이 문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책 말이의 색인사항에서 '참조' 항목에 표시된 쪽수와 실제로 그 단어가 등장하는 쪽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목록에 제시된 쪽수에 단어가 없거나 그 전후 쪽에 있다든가, 단어가 실제로 등장하는데도 쪽수가 목록에 없다든가 등). 이 책이 학술적, 교육적으로 유용한 저술의 모습을 갖추도록 도모하고자 한다면, 지적된 것들이 다소 지엽적이고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긴 해도 분명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가뜩이나 출간된 저서 수가 희소한 이 분야에서 신간이 나왔다는 일 자체도 신나는 일이었다. 보자마자 어머 이건 꼭 사야해 하며 숙고 없이 무턱대고 샀는데, 결코 후회스럽지 않은 양질의 저서였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여하간 수학철학을 알아가고 싶은 그 누구에게들 주저치 않고 강하게 추천해주고 싶은 좋은 책이다. 



사족: H. 퍼트넘과 P.베나세랍이 편집한 "수학철학"(1983, 2nd ed: 박세희 譯, 아카넷, 2002.)을 열심히 읽은 일이 있는데, 최근에 그저 생각이 나 큰맘 먹고 재독하였다. 다 읽고 나서 수학철학 분야의 신간이 혹시 있나 물색하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읽고 보니 이 책에서 주로 인용 및 해설되는(혹은 그 핵심이 짧고 간략하게나마 인용되거나 언급되는) 각 철학자들의 주요 1차 문헌들이, 공교롭게도 퍼트넘과 베나세랍의 책에 대부분 실려 있는 것들*이어서 매우 반가웠다. 해서 이 책의 인용부분 전후 맥락을 그 책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이 책에 제시된 해설을 전체적으로 조감해보고자 그 책에서 원글을 빠르게 통독해보기도 하고, 역으로 원글에서 어려웠거나 막연하게만 파악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명료하게 해석해보기도 하는 등, 이 책과 그 책 양방향으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절판되기도 했고 번역이 아주 좋지 않긴 하지만, 이 책을 각잡고 제대로 읽어보고자 다짐한 사람은 퍼트넘과 베나세랍의 책을 곁에 두고 병행하여 활용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R. 카르납, '수학의 논리주의적 기초', 수학기초론 심포지엄 중 1; '경험론, 의미론, 존재론'("의미와 필연성").

A. 하이팅, '수학의 직관주의적 기초', 상동 2.

J. 폰 노이만, '수학의 형식주의적 기초', 상동3.

L. 브라우어, '직관주의와 형식주의'; '지각, 철학, 수학'.

M. 더밋, '직관주의 논리의 철학적 근거'.

G. 프레게, "산수의 기초"(발췌).

B. 러셀, "수학철학 입문"(발췌).

D. 힐베르트, '무한에 관하여'.

H. 커리, '수학의 정의와 본질에 관한 논평'.

G. 크라이셀, '힐베르트 프로그램'.

P. 베르나이스, '수학에서의 플라톤주의에 관하여'.

P. 베나세랍, '수가 될 수 없는 것들': '수학적 진리'.

H. 퍼트넘, '기초가 없는 수학'; '모형들과 실재'.

A. J .에이어, "언어, 진리, 논리"(발췌).

W. V. 콰인, '규약에 의한 진리'.

H. 푸앵까레, '수학적 추론의 본질에 관하여'("과학과 가설")

C. 괴델, '러셀의 수리논리학'; '칸토어의 연속체 문제란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리철학
알라딘(디폴트) / 1985년 9월
평점 :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교육적으로 아주 탁월한 책이다. 수학철학 분야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을 크게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대별하여 소개하는데, 내용 자체가 기초적이고 그 전달 방식이 평이하여 입문자가 읽기에 매우 좋다. 그렇다고 다뤄지는 내용들이 피상적이거나 혹은 백과사전적으로 파편적인 게 아니라 아주 실속있고 알찬 사안들을 유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기에, 수학철학 분야를 알아가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게다가 무미건조하고 어려운 분야인데도 원저자가 거침 없고 유려하면서도 절제되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어 전달력이 매우 높은데, 이미도 탁월한 그러한 전달력을 매끄러운 번역이 더욱 제고시킨다. 이 분야에 대한 원저자와 역자의 원숙함이나 노련함이 돋보여 감타하며 책을 읽었다.

일례로, 수학철학 관련 저서나 논의에서는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세 사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수학철학적인 사고방식이나 그에서 주로 다뤄지는 문제, 논제, 개념 등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없는 초심자가 무턱대고 세 사조를 이해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점을 감안해서인지 원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철학적으로 조망될 만한 기초사항들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여, 논의가 무르익은 적절한 대목에서 자연수 및 자연수론에 대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을 환기한 뒤 자연스럽게 수학기초론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전문적이고 세세한 사항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논의의 핵심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원저자의 능숙한 솜씨가, 이 책을 학술적, 교육적으로 단순히 좋은 책을 넘어서 <재미있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감탄하기 일쑤였다.

개인적으로도 얻은 바가 많았다. 기하학을 해석된 체계와 해석되지 않은 연역체계로 보는 관점 간의 구분 및 그에 따른 철학적 의의, 추상화된 연역체계로서의 기하학에 수론적인 해석을 부여함으로써 전자의 일관성 문제가 후자의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 기하학을 선험적이면서 종합적인 학문으로 보는 칸트의 관점 및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과 얽힌 철학적 논의 등, 새로 알게 되거나 기존에 알던 바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내용과 형식, 난이도 및 전달력, 다뤄지는 주제의 견실함 등 많은 측면에서 만족스럽고 탁월한 저서이기에, 수학철학에 관심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수학과 철학 양자에 문외한이더라도, 대학생 정도의 교양수준을 갖춘 독자라면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겠다. 활자 크기가 살짝 작긴 하지만 분량도 150쪽 남짓이니 양적인 면에서도 입문서로서 족하다. (외려 나는 이렇게 좋은 책을 이토록 일찍 덮게 되는 게 아쉬웠다) 절판되기도 했고 아주 오래되어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혹여 집 근처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되어 있다면 주저 말고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