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철학
알라딘(디폴트) / 1985년 9월
평점 :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교육적으로 아주 탁월한 책이다. 수학철학 분야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을 크게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대별하여 소개하는데, 내용 자체가 기초적이고 그 전달 방식이 평이하여 입문자가 읽기에 매우 좋다. 그렇다고 다뤄지는 내용들이 피상적이거나 혹은 백과사전적으로 파편적인 게 아니라 아주 실속있고 알찬 사안들을 유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기에, 수학철학 분야를 알아가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게다가 무미건조하고 어려운 분야인데도 원저자가 거침 없고 유려하면서도 절제되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어 전달력이 매우 높은데, 이미도 탁월한 그러한 전달력을 매끄러운 번역이 더욱 제고시킨다. 이 분야에 대한 원저자와 역자의 원숙함이나 노련함이 돋보여 감타하며 책을 읽었다.

일례로, 수학철학 관련 저서나 논의에서는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세 사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수학철학적인 사고방식이나 그에서 주로 다뤄지는 문제, 논제, 개념 등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없는 초심자가 무턱대고 세 사조를 이해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점을 감안해서인지 원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철학적으로 조망될 만한 기초사항들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여, 논의가 무르익은 적절한 대목에서 자연수 및 자연수론에 대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을 환기한 뒤 자연스럽게 수학기초론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전문적이고 세세한 사항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논의의 핵심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원저자의 능숙한 솜씨가, 이 책을 학술적, 교육적으로 단순히 좋은 책을 넘어서 <재미있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감탄하기 일쑤였다.

개인적으로도 얻은 바가 많았다. 기하학을 해석된 체계와 해석되지 않은 연역체계로 보는 관점 간의 구분 및 그에 따른 철학적 의의, 추상화된 연역체계로서의 기하학에 수론적인 해석을 부여함으로써 전자의 일관성 문제가 후자의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 기하학을 선험적이면서 종합적인 학문으로 보는 칸트의 관점 및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과 얽힌 철학적 논의 등, 새로 알게 되거나 기존에 알던 바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내용과 형식, 난이도 및 전달력, 다뤄지는 주제의 견실함 등 많은 측면에서 만족스럽고 탁월한 저서이기에, 수학철학에 관심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수학과 철학 양자에 문외한이더라도, 대학생 정도의 교양수준을 갖춘 독자라면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겠다. 활자 크기가 살짝 작긴 하지만 분량도 150쪽 남짓이니 양적인 면에서도 입문서로서 족하다. (외려 나는 이렇게 좋은 책을 이토록 일찍 덮게 되는 게 아쉬웠다) 절판되기도 했고 아주 오래되어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혹여 집 근처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되어 있다면 주저 말고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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