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산문집
차우진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좀 소원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이 세상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취미, 놀이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던 그 시절.

영혼을 위로하고 사랑을 키우고, 나를 성장시켜줬던 음악들.

어쩌면 그 시절을 흘러왔던 세대들에게는 누구나 '내 청춘의 사운드'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정도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의 '청춘의 사운드'는 바로 그런 책입니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것인지, 그저 어른이라는 그릇에 갑자기 담겼을 뿐, 어른이 아닌.

그래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그런 자신에게 누구도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지 않는 시기.

그래서 그 혼란이 열정과 뒤섞여 끝없는 열병 속에 지나쳐버리는 그런 청춘들에게 차우진의 글은 일관되게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말해줍니다.

그의 장기인 '음악'을 통해서 말입니다.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았다. 사랑도 분노도 절망도 바닥까지 몰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이 빠질 때까지 울며 뛰며 소리치며 스스로를 닥달했다. 스스로 경계 지어 놓은 진짜와 진짜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판독하기에만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 김선우 시인의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서문에서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상 여러 곳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펴낸 책인 만큼, 참 수많은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음악들의 소개로 끝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그냥 관심있는 음악만 읽어보고 그냥 접었을 것 같습니다만, 앞서 언급했던 청춘의 BGM이라는 성향과 음악 평론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은 적절히 두 가지 니즈를 모두 만족시켜주고 있습니다(하물며 약간은 멜랑꼴리하고 조금은 자기비하적인 그의 글 스타일이 정신 없이 느껴지면서도 치밀한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글발이 좋달까요. 부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재'의 장점은 반대로 감성적 노스탤지어와 학술지향적 고리타분함의 한 쪽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면(예컨데 저는 예전 앨범을 사면 들어있던 깨알같은 글씨의 앨범 평론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이런 걸 왜 넣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누군가 청춘을 겪고 있거나 그 시절을 지내왔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정서와 같은 색으로 흐르는 음악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리고 그의 청춘, 누군가의 청춘을 엿듣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1. 위태롭게, 아름답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된다 -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젊은 날의 불확실성과 지속가능성 - 장기하 [싸구려 커피]
자신의 20대에게 보내는 편지 - 옥상달빛 [28]
청춘, 허비해도 좋을 시간 -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알앤비>
믿는 것을 계속 지켜나갈 것 - 크라잉 넛 [불편한 파티]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 얄개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 시대의 청춘송가 -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2. 파도색 나날들
어금니 꽉 깨물고, 행복해지기 - 이장혁 <스무살> 외
불안이 삶을 지탱한다 - 눈뜨고 코베인 [Murder’s High]
나를 뚫고 지나간 차가운 서정 - 미선이 [Drifting]
몸에 새겨진 시대의 감수성 - 샤이니
노스탤지어, 어쩌면 그것은 농담 - UV [집행유애]
괜찮아, 모든 건 다 변하니까 - 시와 [시와,] 외
무얼 해도 슬펐던 시절의 풍경 - 황보령 [Shine In The Dark]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Infield Fly]

3. 꽃을 문 토끼들의 초상
우리는 어쩌면 고아들처럼 - 에피톤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
적을 만들자, 사랑을 키우듯 - 검정치마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어른이 부르는 구식의 사랑 노래 - 양양 <오 사랑이여>
하여,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 하헌진 <카드빚 블루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멱살을 잡고 - 노라조 <카레>
나는 너와 어째서 다른가 - 칵스 [Access Ok]
한계를 인정할 것, 부끄럽고 힘들어도 - 브라운 아이드 걸스

4. 너와 나의 21세기
시속 140km와 어른 되기 - 메이트 [Play OST]
잔뜩 어깨를 움츠린 수컷의 고백 - 백현진 [반성의 시간]
어둠 속에서, 매혹당한 채로 - 사비나 앤 드론즈 [Gayo]
귀여운 남자의 탄생 - 10cm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저기와 여기, 말의 거리 - f(x) [Nu 예삐오]
그녀만의 것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 - 가을방학 [가을방학]
비겁하지 않게 산다는 것 - 흐른 [흐른]

개인적으로 제 나이와 굉장히 비슷하고, 그래서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아왔을 저자이지만, 제가 들어왔던 음악들과는 꽤 결을 달리 합니다. '곧 죽어도 락(Rock)'이라며 락음악을 좋아했지만 그야말로 천대받으며, '락 밴드'와 '인디'라는 단어가 동의어로 느껴지는 대한민국 음악계가 싫었는지, 아님 그냥 포기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예 무관심했었지요.

그러던 중 최근 '탑 밴드'라는 공중파의 밴드 서바이벌, 그리고 이런 책을 통해서 다시 듣게 된 국내의 락음악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물론 이 책에 락음악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놀랍게 좋은 음악이 많았어요. 무려 '아이돌'도 있구요).

청춘에 이어지는 세상살이에 대한 현실적인 두려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텁텁함, 삶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마찰력. 이런 이어짐의 공감대는 이미 청춘이 지나버린(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지만서도요) 사람들에게도 공감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미, 저자의 말대로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개쯤은 더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음악이 주는 공명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강력함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팍팍함과 쉽지 않음을 경험한,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들, 그리고 '한 때는 나도'라는 감정이 살아나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럭키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