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87년 6월 민주 항쟁.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 그 때의 이야기를 논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 봐줘도 헛소리가 될 것 같다. 그 때를 겪지 못 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이 만화 '100도씨'가 더 와닿는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일까. 




4. 13 호헌조치.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지 않았을까.

대학 시절, 주위 형들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에 앉도록 들으면서도 정말 그랬단 말야? 라면서 무지를 뽐냈던 나. 그러던 중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광경과, 신문 방송에서 나오는 광경이 얼마나 다른지를 몸으로 체감한 후에서야 선배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열사'라는 칭호 하나를 얻고 목숨을 잃어간 이한열과 김종철, 그리고 '군사독재자', '엄청난 부정축재'로 전국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며,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취임 인사도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면 나 자신의 가치관조차 혼란을 일으키는 아찔함을 느낄 수밖에.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꿇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그렇게 그들은 끓었다. 100도씨가 되는 그 순간에.



역사가 증명하는 사람의 끓는 점, 100도씨. 6월 항쟁에서 분명 우리는 끓었다. 99도가 아닌 100도로써.
그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던 거룩한 역사의 기억, 하지만 또 하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 
분명 20여년이나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들, 하지만 내가 경험치 못한 것을 마치 데자뷰처럼 느끼게 되는 기묘한 경험. 요즘의 모습에 왜 이리 투영되는 것인지.


민중을 두려워할 존재가 아닌 '말을 듣게 할' 존재로 보는 것부터 마치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듯 집회를 방해하거나 지하철을 무정차 운행하고, 독재에 항거하며 바닥에 드러누워 비폭력 항쟁을 하는 이들을 공권력의 무자비함으로 진압하는 모습, 심지어는 국민들의 의견들은 묵살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책만을 정당성 없이 발표해버리는 것들까지.


이 책의 출간 목적이 '그렇게 힘들게 이룩해낸 우리의 민주 항쟁을 잊지 말자'였던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서글픈 반복을 경계하자'인 것인지가 혼동되는 순간이다.




촛농소녀, 브이(for Vendetta), 녹용. 그래서 어쩌자고?!!!


그리고 그런 혼동은 어쩌면 부록이자,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 본격 민주주의 학습만화인 '그래서 어쩌자고?'에서 극에 달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것이 그저 국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 다 민주주의 국가인 것일까? 그렇다면 대다수의 행복을 논하기 마련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이리 정당성이 문제가 되는가, 그리고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과연 어쩔 수 없는가?



이런 질문들은 어쩌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그래서 어쩌자고?'를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참 우습다. 사실 이 만화는 시민교육센터의 이한씨가 만든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를 기반으로 만든 만화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산다고 자칭하는 주제에, 나이가 서른줄이나 된 주제에 '청소년용 교제'에 이런 인상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참. 작가 최규석의 뛰어난 감각을 통한 만화화가 훌륭한 것이라고 자위해보지만 나 자신조차 이렇게나 무관심해왔다는 것 자체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떤 부류인가요?




요즘 참 입에 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 불만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나 자신부터. 그런 변화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변혁이다. 하지만 한 번 눈을 뜬 사람들은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할 뿐.


사실 이 만화, 6월 민주항쟁 계승 사업 차원에서 만들어진 만화이며(그 덕분에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전국 중고등학교에 현대사의 보충교재로 배포된다고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100도씨도 훌륭하지만 이 '학습만화'를 더 배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 부록이 가장 중요한 기반을 만들어줄 녀석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집에 한 권씩 두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충분히 있을 것 같고("아빠, 민주주의가 뭐야?"라는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관심을 갖는 것,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의 결과는?




지금 우리는 과연 몇도씨일까.
그리고 그 물이 끓어 넘치려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 안 넘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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