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52세의 나이에 사실상 소설가로서는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칼의 노래'를 두 달만에 탈고하고 "실존적 사유의 미학적 전투"라는 어렵지만 근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작가 김훈. 게다가 100만부가 넘는 판매량을 올릴 만큼이나 컸던 대중적인 인정.

두 달만의 탈고, 처녀작이 밀리언셀러.
놀랄만큼이나 인상적인 그의 성취에 그의 연보를 살펴보다 또 한 번 놀랐다. 늦으막히 소설가로서의 이름을 알렸을 뿐, 이미 그 전부터 '우리시대 최고 미문의 에세이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개인적인 교양의 일천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하겠다).
뭐 그래서 '바다의 기별'을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겠다.

그래서 펴든 '바다의 기별'. 왜 이리 걸리는 게 많은 텍스트일까. 까끌한 아픔들, 까칠한 고민들, 빡빡한 부정들이 텍스트의 흐름을 자꾸 멈추게 한다. 왜 그의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으며, 왜 뇌종양은 음식에서 '구린내'를 양산하며,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인 것일까. 분명 어느 책이든 그런 빡빡함도 한참을 씹으면 은은한 단내가 나기 마련이건만 개인적으로는 참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더딘 책이었다. 왠지 그런 빡빡함이 신파적이거나 연민을 끌어내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직접적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고.

몇 번을 그냥 덮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 빡빡함도 맛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더니 왠걸. 평소 다른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가 '우리시대 최고 미문의 에세이스트'로 평가받는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빡빡한, 슬픔의 언어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로 구성된 글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는 분명 행복이었다. 설화적인 가난을 만들어낸, 적잖은 술과 무책임함으로 묘사되는 아버지임에도 그를 두둔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온전히 그를 이해하는' 우리네 소박한 삶에 대한 이해와 어루만짐. 그리고 그에 의한 행복함이야말로 어쩌면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언어로 쓰여진 이 책 속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담겨있다. 글과 국악, '칼의 노래'의 배경이 되었을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그와 함께 난중일기가 갖는 텍스트적 탁월함까지), 칠장사와 임꺽정, 오치균의 그림... 에세이라는 것이 어떤 작가의 실질적인 내면을 어렴풋하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고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그런 에세이들 중에서도 이런 경향이 매우 강하다. 절절하게 표현하기 때문일까. 그의 글이 갖는 특성이 왜 나오는지, 왜 이렇게 깔깔했던 것인지 왠지 책을 보면서 점점 알아가게 된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맛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이 바로 오치균의 그림에 대한 글. 책 뒤에 그의 그림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꽤 마음에 들어버렸다. 오치균의 그림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김훈의 글 때문일까...


그리고 13편의 에세이와 함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 속의 서문들, 그리고 수상 소감은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부록이라는 느낌이다.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부분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생각으로 쓰여졌는지를 밝혀주는 서문과 수상 소감들은 또 다른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잘 쓰여져 있었다. 전에 소설의 앞부분에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이렇게 모아놓고보니 새삼 놀랍다. 그만큼 늦으막에, 그리고 단시간에 이렇게나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가 있었던가...


사실 개인적으로 어두운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에세이라면. 한 작가의 소설은 어둡고 무겁더라도 별 상관없이 읽는데,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왠지 가슴을 살살 간지르는 부드럽고 현실적인 그런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책, '바다의 기별'은 잘 못 펴 든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내 스타일이 아냐'라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 그의 소박한 삶 속의 행복을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취향을 고려해볼 때 참 이상한 일이다. 여러 의미에서 참 국내 최고의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자전거 여행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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