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엮음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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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맛난 것'이 유독 땡길 때 발동하는 사람들의 몇 가지 유형들.
1. 주위 친구들에게 묻는다.
2. 인터넷, 잡지 등의 정보를 활용한다.
3. 평소에 가고 싶은 맛집들을 정리해두었다가 이럴 때마다 활용한다.
3. 항상 가던 맛집들 중에서 고른다.
4. 그냥 참는다.
...

개인적으로는 2, 3번을 선호하는 편인데, 인터넷의 발달로 최근에는 참 정보가 많기도 하고 얻기도 쉽다. 다만.
문제는 비전문가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X 밟았다'라며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엄청난 정보의 양 속에서 쓰레기도 넘쳐나거든.
그래서,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정말 맛을 아는 미식가가 직접 소개해준 집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설명해주었던 맛을(혹은 같이 가면 더욱 좋다) 생각하며 혀를 굴린다. 아. 맛 참 좋다!




어쩌면 책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이미 문학만 하더라도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양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정말 글맛이 좋은 텍스트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정말 글맛을 아는 전문가가 맛난 것들을 잘 골라서 메인디시 삼아 건네주고, 그 맛에 대해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피어라 상상력, 즐겨라 문학. 인터넷 문학도시를 표방하는 문장(http://www.munjang.or.kr/)에는 문학 집배원이라는 코너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이 서비스가 바로 그런 서비스이고,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안도현, 성석제를 이어 지금은 나희덕(시), 김연수(문장) 배달을 계속하고 있다(RSS 서비스도 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인터넷 문학도시, 문장'에 한 번 들러봐도 좋을 듯 하다.

이 책,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은 바로 이 문학 집배원 중 한 명으로 작가 성석제가 배달해왔던 편지를 묶은 책. 예전에 참 즐겁게 읽은 적 있던 안도현 시인의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와 같은 맥락의 책이다. 안도현 시인의 것이 '시배달'이었다면 이번에는 '문장배달'이라는 것이 좀 다를 뿐.




한, 두 페이지 정도, 작가 성석제가 직접 글맛이 좋은 문장들을 선택해 소개하고,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추천 이유 등을 담는다. 그리고 그런 선택 기준은 동서고금을 막론해, 구수하고 구성진 사투리가 넘치는 우리네 고전문학부터, 재기가 넘치는 최근 젊은 작가의 한국문학까지, 그리고 빠블로 네루다 같은 외국 시인이나 로얼드 달같은 소설가부터 루트비히 반 베토벤같은 음악가까지. 그가 읽어온 텍스트의 바다 속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티가 나는 그런 문장들로 한 권의 책이 빼곡히 차 있다.

짧지만 참 괜찮은 글들 한 편, 한 편. 화장실에서 잠깐 읽어도 될 만큼이나 짧지만 몇 번 거듭 읽어도 그 맛이 오히려 더 살아날 만큼이나 감칠맛이 각별한 그런 글들이기에, 단번에 읽어버리는 것보다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잠깐잠깐 짬날때 조금씩 읽어갔음에도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입맛을 다셨다.

것 참 신기한 일이다. 살아가며 정말 끊임없이 만나는 것이 바로 이 '글'이라는 존재인데, 어떤 글은 그렇게나 무미건조한데 어떤 글은 이렇게나 찰진 맛이 날 수 있을까. 그 덕분에 이미 읽었던 책 속에서의 글들은 그 존재를 다시 한 번 즐거워할 수 있었고, 읽지 않았던 책 속의 글들은 그 매력 덕분에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소설들이 꽤 많이 늘어버렸다. 맛집 정보활용의 3번 항목을 꽤 든든하게 마련한 셈이다(솔직히 읽고 싶은 책 항목은 지금으로서도 포화상태지만).



성석제. 솔직히 그의 글은 잘 모른다. 많이 접해보지도 못 했고. 하지만 이 정도의 선택을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설명을 멋지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도 그만큼이나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이전에 나왔던 안도현 시인의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에서는 CD 부록을 통해 멋지게 낭송된 시 모음집을 선사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어 조금 아쉽다. 매주 배달되는 e-mail은 분명 정성스레 만들어진 플래시 영상이 담겨있었는데, 이것들을 모아서 담아주었다면 더욱 더 기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글맛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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