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로라.

너에게 편지를 쓰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나 자신이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점점 기술은 발전하고, 그런 발전 속에서 핸드폰과 e-mail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정말 편리해졌지. 하지만, 왜일까. 그런 것들이 없었던 시절, 손으로 직접 쓰던 편지가 가진 따스함과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그리워지는 것은 말이야. 며칠이 걸리지만 그것을 받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쓸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교감은 문명의 이기가 줄 수 없는 그런 따스함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 비록 지금 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긴 하지만, 네가 언제 볼지 모른다는(썼다는 말 안 할 거거든. 메일로 보낼 생각도 없고) 그런 기대감 속에서 그 때의 그 교감을 느끼는 것 같아 왠지 기뻐. 직접 편지를 쓰며 느끼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말야.

아무튼 얼마전, 내가 추천했던 기욤 뮈소의 '구해줘'를 읽고 난 후의 너의 반응에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간 나름 많은 책을 추천해줬지만, 네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서 읽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후, 얼른 나도 읽고 같이 이야기하자는 말에 난 그저 기쁠 뿐이었지. 그래서 오늘 한 권의 책을 더 소개해주려고 해. 책 제목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이 기묘한 이름의 소설은, 런던에 살고 있는 한 여류 작가가 판 중고책 한 권이 건지 섬에 우연히 흘러들어가고, 그 책을 발견한 도시 애덤스라는 남자가 그 책과 작가 '찰스 램'을 좋아하게 되면서, 책을 구하기 위해 원 주인에게 편지를 쓰게 돼. 원 주인의 주소가 책에 적혀 있었거든. 그리고 그렇게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한참 소재 고갈에 고민하던 '줄리엣'이라는 이름의 여류 작가는 건지 섬, 그리고 그 섬에 있다는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문학 클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게 되지.




이쯤 되면, 내가 왜 굳이 너에게 책을 추천한다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지 짐작했을거야. 넌 충분히 현명하니까. 바로 이 책의 전체 텍스트는 전부 등장인물간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렇게 편지로만 이루어진 500페이지 가량의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는거야. 그리고 자연스럽기도 하고. 1940년대, 영국의 런던과 채널 제도의 한 섬인 건지 섬과의 거리,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교감은 어쩌면 '편지'라는 매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직접 책을 읽을 테니까 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밝히지 않겠어. 하지만 이 기묘한 이름의 문학 클럽이 만들어진 것은, 당시 있었던 2차 세계 대전 속에서 건지 섬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었던 사회적 배경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야기해줄께.

그래서 이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코드 안에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첫번째는 앞서 말한 2차 세계 대전의 아픔이야. 주인공 줄리엣이 건지 섬의 사람들과의 편지를 주고 받고, 나중에 찾아가면서 알게 되는 건지 섬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 아름다운 섬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면서 벌어지는 핍박과 아픔들이 오롯이 드러나게 되지. 마치 '웰컴투동막골'같은 느낌이랄까. 섬이라는 단절된 장소이기에 정보도 빠르지 않고, 전쟁과는 크게 관련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특수한 상황들. 분명 그들을 점령하고 아픔을 주는 독일군이지만, 그 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참전한 사람들이 있기도 할테고. 순박한 섬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인간미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가운데 전쟁의 참혹함과 그 가운데 피어나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인간미가 참 좋았어.

그리고 두번째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야.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정착하면서 엄청난 작품들을 써낸 곳이 바로 이 건지 섬이라고 해.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던 문학에 대한 사랑을 이 책에 가득 담아두었어. 세네카, 셰익스피어, 찰스 램,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오스카 와일드, 찰스 디킨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작가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했는지가 그래도 느껴질 지경이야. 마치 내가 너에게 책을 권해줄 때 느껴질 그런 애정이랄까?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특히 두 주인공을 연결해준 찰스 램의 작품들,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픽윅 페이퍼스'라는 책을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그리고 나도 '감자껍질파이 클럽'처럼 자기 나름대로의, 하지만 넘치는 애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저런 문학클럽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이 흰머리의 할머니가 이 책의 작가인 메리 앤 셰퍼 씨야. 평생 책과 함께 사신 분이라고 해. 그리고 이 소설은 그녀의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지. 그야말로 '스완 송' 그 의미 자체가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은 건지 섬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야. 너도 알다시피 난 참 '로맨스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사랑 이야기는 참 좋아하지만 엘리자베스 베넷과 미스터 다시라면 딱 질색하지. 그런 내가 그들의 추종자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이렇게나 즐겁게 읽었던 것은 왜일까. 분명 내가 싫어하는 그런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 책 속의 러브 스토리는 싫지 않았어. 그래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생각했는데, 문득 그 답이 떠올랐어. 그 정답은 바로 너야.



건지 섬의 모습 중 하나야. 비록 책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정말 아름다운 섬인 것 같다는 부분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

두 주인공이 함께 있는 시간 속에는 언제나 건지 섬이 있어. 그리고 그 섬은 정말 아름답게도 묘사되어 있고. 너도 알다시피, 너나 나나 참 여행을 좋아하잖아. 왠지 줄리엣과 도시의 몸짓 하나하나, 그들이 함께 한 장소 하나하나 속에서 네가 떠올랐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그런 바람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되었달까. 그만큼이나 작가가 소설 속에서 건지 섬을 정말 아름답게도 그려놓았고, 또 그만큼이나 그들의 사랑이 예뻤던 거겠지.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 속에서 우리를 떠올렸기에 더욱. 그 곳에 함께 있는 우리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갑작스럽고, 또 엉뚱하겠지만...
나와 결혼해주지 않겠어? 그리고 함께 신혼여행으로 건지 섬에 가자.

공식적인 첫번째 프로포즈가 이렇게 엉뚱한 방법이라니,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로맨틱한 프랑스 음식점과 다이아몬드 반지(비둘기알만큼 큰 것은 못 해줘)는 다음에 또 할테니 말야.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너에 대한 간절함을 바로 지금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거든.

만약 허락한다면, 나에게 이 책을 빌려달라고 말해줘. 그럼 정말 행복할꺼야.

우연히 건지 섬으로 날아간 찰스 램의 책 한 권이 편지가 되어 런던으로 날아와 그들을 사랑하게 했던 것처럼,
너 몰래 쓰는 이 편지가 언젠가 너에게 읽히고, 네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영원한 사랑을 담아, 광서방


추신. 그런데 말야... 비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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