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역삼국지 세트 - 전10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고전
나관중 지음, 정원기 옮김 / 현암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삼국지만큼 우리에게 인기있는 컨텐츠가 또 있을까.
'대한민국 남자 중에 삼국지 한 번 안 읽은 사람 있겠나'라고 이야기들 할 정도로 유명한 삼국지. 소설, 영화, 게임, 만화 등등의 다양한 컨텐츠로 참 많이도 등장하는, 우리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기 컨텐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마침 이 시기에 역시 삼국지를 소재로 한 영화 '적벽대전'이 예매 1순위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직업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회사가 바로 게임 '삼국지'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사 이기도 하고.

이런 인기 컨텐츠이기 때문에 또 참 많이들 변화한다. 과연 어떤 것이 오리지널인가.. 라고 묻는다면 참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그 컨텐츠는 변화하여 적용되고 그렇기에 더욱 그 생명력을 길게 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하면서 오리지널과 미묘하게 비교되는 속에서 또 다른 큰 재미가 솟아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럼 과연 오리지널은 뭘까?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정역 삼국지'라는 작품을 만나게 되고 나서 꽤 놀랐다. 그간 전혀 몰랐던 일이지만,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발표 결과에 의하면, 192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어로 출간된 완역본 삼국지가 모종강본 계열의 중국본이 58종, 요시카와 에이지 계열의 일본본 59종, 국내 작가에 의한 독자적 재창작 및 평역이 27종으로 모두 144종이고, 여기에 축약본 86종까지 하면 총 230종이나 된다고 한다. 여기에 다양한 컨텐츠로서(영화, 만화, 참고서 등등) 퍼진 것을 포함하면 무려 342종이 넘는단다. 국내에서만.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가운데 중국문학 전공자가 체계적인 삼국지 학습을 통해 완역을 시도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고.
이것 참 놀라운 일 아닌가. 국내 출판계, 혹은 컨텐츠적으로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지만, 그 가운데서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오리지널 삼국지를 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참 놀라우면서도 재미있다.




이런 가운데, 현암사에서 이번에 발간된 '정역 삼국지'는 그 제목부터 '정역'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그만큼이나 원본에 가까우며, 일반적으로 번역에 사용하는 모종강본이 갖고 있는 '기술적 착오'를 교정, 정리한 '교리본'을 국내 유일의 삼국지 연구가라 할 수 있는 정원기씨가 번역한 책이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발간된 그 어느 삼국지보다도 완성도가 높은 그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완역'은 과연 어떨까.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참 좋아하기에 다양한 삼국지를 읽고 또 즐겼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총 10권이나 되는 삼국지를 완역으로 읽었는데, 우선 첫번째 느낌은 보다 유연하다는 것. 뭔가 빈 듯한 허점이나 부족한 느낌이 없이 참 제대로 서술된 느낌이다. 그간 읽어왔던 삼국지들이 갖고 있던 부족함들을 보완했음이 잘 느껴지며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이런 부족함을 국내 작가들은 '평역'이라는 느낌으로 자신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보완해왔고, 그렇기에 번역 이전의 오류를 제대로 보완할 수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번역 이전의 오류를 보완한다는 것은 오역이 되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정역 삼국지'의 경우는 오류를 보완한 원본(교리본)을 삼국지 연구가의 손을 통해 번역했기에 훨씬 깔끔하고 원전의 느낌이 강하다(실제 원전을 본 적이 없기에 내 느낌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 읽어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일까, 정말 삼국지가 이랬던 것인가? 라고 되물을 정도로 내용 안에 '시가(詩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 덕분에 훨씬 더 깔끔하게 넘어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만, 역시 원전이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국문학스러운 느낌은 대부분의 삼국지를 읽어왔던 사람들에게 조금 껄끄럽게 다가올수도 있다. 일반적인 국내외의 소설들의 경우, 이야기를 전달하되, 그것이 감정선을 건드리거나, 스토리적 재미를 위해 극적인 긴박감을 준다거나 하는 것들을 인공적으로 강하게 묘사해 그 전달력을 높이는 반면, 이 책의 경우는 그런 부분들을 담담하게 전달하고 그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곱씹으며 내용을 음미하는 그런 서술을 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찬반이 나뉠 부분이라는 느낌이다.
제대로 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은 고전 명작을 읽는 듯한 그런 껄끄러움을 갖고 있달까.



그리고 '정역 삼국지'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장점은 바로 이 '그림'에 있다. 총 60명의 중국 화가들이 그린 이 책의 엄청난 양의 삽화는 그야말로 볼거리다. 다양한 화가들이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각각의 그림의 느낌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런 다른 느낌들이 '삼국지'라는 하나의 테마를 통해 텍스트와 어우러지는 느낌은 이 책만이 줄 수 있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책을 덮으며 참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게도 많은 삼국지 컨텐츠들을 즐겨왔으며, 또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 각각의 컨텐츠들이 갖는 미묘한 다름을 좀 더 빨리 알 수 있었다면 좀 더 흥미로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며, 또 '아 원래의 삼국지는 이런 느낌이구나'라며 그간 접해왔던, 새로운 삼국지가 어떤 부분에서 더 재미를 주려는 노력을 했었나를 알게 되면서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완성된 탄탄함을 만끽했다는 그런 느낌.

물론, 전반적인 스토리나 줄기는 다를 바 없다. 당연히 삼국지니까. 하지만, 1++ 한우를 먹어봐야, 한우 등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듯, '오리지널'을 알아야 그렇지 않은 것들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었던 오류든, 컨텐츠의 완성도를 위한 인위적인 차이이든 말이다. 그런 오리지널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책 뒷표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집집마다 한 질씩 보관'까지는 몰라도, 분명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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