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붕 위의 신발
뱅쌍 들르크루아 지음, 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12월
평점 :

무심코 본 창 밖에 덩그러니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개인적으로도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니, 음....
도망간 불륜 아저씨, 미움받는 아버지, 신데렐라 혹은 섹시한 여자? ...
뭐.. 점점 망상에 가까워 가는 듯 한데, 프랑스의 작가 뱅쌍 들르크루아는 이 소재를 가지고 무려 10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빠리 북역 근처 아파트 지붕 위의 신발.... 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구성의 10가지 이야기. 음, 구미가 당기지 않나?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보니 이것 참 흥미롭다. 뱅상 들르크루아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해보지만, 이렇게 재기발랄하고 다양한 시도를 좋아하는 작가가 그리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 총 10편의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느낌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각각 다른 작가의 시도를 담고 있다. '동화 증후군'처럼 메르헨적인 느낌을 담거나, 혹은 발자끄나 졸라의 소설과 같은 듯 다른 느낌을 표방하면서도 신화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비극적 요소', 저자와 독자의 분신인 듯한 인물들을 내세우는 '미학적 요소' 등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색깔로 '지붕 위의 신발'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 작품의 인물들은 다른 작품과 상관이 있으면서도 또 없는 듯 묘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재미도 참 좋고. 이런 장치들 덕분에 '지붕 위의 신발'이라는 같은 모티프를 가진 10편의 이야기를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진행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리베라시옹의 추천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환상적이거나 엄청난 몰입이라기보단, 철학과 팬터지가 가득한, 하지만 바로 우리 인생사를 그린 그런 재기발랄한 소설이라는 생각.
특히 관심있는 분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만한 부분은 바로 작가 들르크루아의 철학자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그가 철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책 속에 그가 말하고 싶은 철학적인 요소들이 꽤 녹아있고, 이런 부분은 소설적인 재미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재미를 해치는 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수준의 철학과 적당한 수준의 미학, 적당한 수준의 사색과 적당한 수준의 고전과 문화가 담겨있다. 마치 일본 문화를 빼고 프랑스 문화를 조금 더 담은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랄까.
덩그러니 지붕 위에 떨어져 있는 신발 한 짝. 그것 참 느낌이 처량하다. 그리고 그 신발 한 짝의 처령함을 가공하여 우리네 인생사 속의 고독을 이끌어낸 작품, '지붕 위의 신발'은 그런 우리네의 인생, 실제로 부조리한 우리 인생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기에 참 재미있다. 비록 그것이 대한민국의 기와 지붕이 아닌 프랑스 북역 근처의 아파트 지붕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지 않은 또 다른 길을 볼 수 있다. 가지 않았지만 갈 수도 있었을, 인생 속의 고독들을, 그리고 그런 고독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보고 있으면 참 우리 삶은 다양하고 또 그렇기에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슬픔 한 자락, 그리고 그 슬픔에서 파생된 고독 한 웅큼의 이야기들. 그렇기에 이 책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