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 읽는 CEO - 나를 재창조하는 생각의 여백 읽는 CEO 3
고두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는 시

늦봄에

- 왕기

매화 시들고 나니
해당화 새빨갛게 물이 들었네
들장미 피고 나면 꽃 다 피는가 하였더니
찔레꽃 가닥가닥 담장을 넘어오네

찔레꽃 지고 나면 또 무엇이 넘어올까.
비 그친 봄 들판에 풀빛이 짙어오듯
여름 꽃, 가을 열매, 겨울 씨앗......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의 담장은 언제나 풍요롭다.
그러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거든 그의 소유를 늘리지 말고
내일의 양을 늘려주어라.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들 중에서, 시 그것도 옛시를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으로만 해도,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 박병원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한곡선박운용 김연신 사장,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등 참 여러명의 뛰어난 인물들이 옛시를 통해 지혜를 탐구하고 또 그 풍류를 즐긴다. 며칠 전(9월 23일)에는 공병호 박사의 뉴스레터를 통해 이 책, '옛시 읽는 CEO'에 소개된 몇 편의 시와 해제를 받기도 했다(공병호 박사의 책이 나오는 출판사를 생각한다면 출판사의 입김이나 마케팅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사실 그런 옛시들은 워낙 해석하기도 쉽지 않고, 또 그 안에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닌가. 왠지 모를 압박이 가득한 한자, 그것도 한자만 알아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그런 '은유의 미학'으로 표현해낸 그런 작품들이기에 더욱 난해하고. 그래서 솔직히 부끄럽지만 예전 교과서에서 본 시 몇 편, 그리고 논술과 본고사 공부를 위해 읽었던 몇 편의 옛시가 전부다. 그나마 거의 다 깜깜하게 잊혀져 버렸기도 하고.



시의 원문 소개, 그에 대한 해제, 그리고 저자의 해박함이 담긴 관련글로 한 편 한 편이 구성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나에게도 옛시 읽는 CEO는 참 좋았다. 우선 그 시를 소개하고(아직도 대부분의 시는 암호 수준이지만), 그 시의 의미를 잘 해제한 후, 그 시가 담고 있을 의미를 현대의 시점에서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그 안에 있는 통찰력을 전해주려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그리고 매우 알아듣기 쉽고 시를 좀 더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책이다.

그런 노력이 좀 지나쳐 '옛시 읽는 CEO'라는 제목과 컨셉에 맞추기 위한 그런 급작스런 방향성은 아닌가 하는 몇몇 서술을 제외하면 그 외의 것들은 굉장히 공감이 가며 또 느끼는 바가 크다. 그 소재도 경영의 도를 맛보게 해 주는 그런 것들부터, 인생의 행복, 사랑, 중용, 창조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울림들이며, 또 통찰들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저자 고두현씨의 어머니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이안눌의 '따뜻한 편지', 고두현씨가 참 좋아하는 시라는 두보의 '곡강이수 2',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려면 그의 소유를 늘리지 말고 내일의 양을 늘려주라는 왕기의 '늦봄에'가 가장 좋았다. 그리고 그다지 느낌이 오지 않던 시들도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읽는 동안 그 시가 갖는 찬란한 은유의 맛에 놀라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아름다운 옛시들은 춘, 하, 추, 동 사계로 나누어 구성하고, 멋드러진 사계의 수묵화들로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를 북돋운다.


이백의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를 소개하며 저자는 포도주 한 모금에 시 한 편씩을 음미하며 봄밤의 엄청난 사치를 즐겼다 했다. 나 역시 오늘 이 책과 함께 오렌지에이드 한 모금에 시 한 편씩을 음미하며 가을밤의 엄청난 사치를 즐겼다. 바로 이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 그리고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마셨던 포도주, 내가 마신 오렌지에이드는 어쩌면 저런 옛시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존재일지 모른다. 그리고 현 시대와 옛시 간의 거리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제대로 해제되고 또 그에 대한 통찰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이 책은, 그런 거리를 단번에 좁히고 하늘의 달과 내 그림자, 그리고 나와 옛시가 함께 술을 마시는 그런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었으니까.

풍류 속에 담긴 아름다움과 지혜, 그리고 통찰력을 발견하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닫는 시

미인의 뒷모습

- 진초남

미인이 등 돌려 옥난간에 기대었으니
안타까워라 꽃다운 얼굴 한번 보기 어렵네
몇 번을 불러도 고개 돌리지 않는 그녀
급한 마음에 그림을 뒤집어서 본다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내면이 도타운 사람이다.
가만히 있어도 불러보고 싶은 사람,
뒷모습이 참해서 돌려보고 싶은 사람,
못 보면 안타까워 옥난간을 휘돌아가고픈 사람......
그러나 잊지 말자. 학문이나 예술에는 스승이 있지만,
매력만은 스스로 가꾸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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