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에 다녀온 선비 - 한국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금오신화 교과서에서 쏙쏙 뽑은 우리 고전 1
한교원 지음, 김언희 그림, 김시습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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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 그것도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사실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현 시점에서의 한국은 한국적인 것들도 물론 남아있지만, 서구적인 생활방식을 상당히 취하고 있고 그 덕분에 고전을 읽다보면 꽤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각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고, 또 흥미에 의해 움직이기 쉬운 아이들에게 우리의 고전을 읽힌다는 것은, 그렇기에 더욱 쉽지 않다. 우리네 정서, 우리네 흥취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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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뭔가 많다. 그만큼 우리 고전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많다는 의미겠지.

이런 고민에 대한 결과로 나온 듯한 '교과서에서 쏙쏙 뽑은 우리 고전' 시리즈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고전번역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과 함께 하고, 어린이문화진흥회로부터 좋은 어린이책으로 인정받았으며, 초, 중, 고 교과서, 수능 언어영역 출제 고전 작품을 총망라하겠다는 계획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리즈는 그런 시도만큼이나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라게 만든다. '초등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즐거운 책읽기로서의 대처'와 '자칫 잘못하면 고전읽기를 학습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의 아슬아슬한 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굵직한 기획 시리즈의 첫 작품은 다름아닌 김시습의 금오신화. 교과서에도 단골로 등장하시는 매월당 김시습의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는, 유, 불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그의 성향과, 탁월한 문장력, 그리고 우리네 조상님들의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그런 소설이다. 그런 여러 가지 점을 보았을 때,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고전의 재미와 상상력의 여지, 그리고 역사적인 깊이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기에 충분히 경쟁력있는 선택이 아닐까 한다.
총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있는 금오신화 중에서 이 책에는 '저승길에서 만난 남녀(만복사저포기)',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생규장전)', '용궁에 다녀온 선비(용궁부연록)'의 세 편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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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말 간만에 읽어본 '금오신화'는 다시 한 번 우리 고전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유부남이라 해도 믿을만한 나이가 되버린 광서방이 읽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재미, 그리고 사회적인 비판과 상상력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책을 덮지 못하고 세 편을 단번에 읽어버렸다.
또한 새롭게 그려진 삽화는, 극히 한국적인 느낌이면서도 현 시점에서의 아이들에게 거부감이 없을 듯하게 아름답게 그려져 있으며, 원전이 한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본문은 물론 책 전체적으로 자주 나오는 싯구의 번역 역시 매우 자연스럽고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초등학생이 읽기 좋은 고전'이라는 기획 의도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다.


저승길에서 만난 남녀(만복사 저포기)
노 총각 양생이 외로움에 사무쳐 부처님과 윷놀이를 통해 배필을 약속받는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깊고 애틋했다라는 것에서 시작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불교의 인연사상이 잘 드러나며, 구전으로 전해온 옛날이야기가 소설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생규장편)
너 무나 깊게 사랑하는 두 남녀가, 홍건적의 습격으로 안타까운 이별을 하지만, 결국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는, 인간의 의지의 강렬함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한, 홍건적 등의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표현하면서 시대 비판적인 성향도 띄고 있다.

용궁에 다녀온 선비(용궁부연록)
표 제작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으로, 글쓰기에 탁월한 한 선비가 용왕의 초대를 받아 선경에 들러 용왕에게 글을 써주기도 하고, 연회에도 참석하며(이 대목을 보면서 디즈니의 Under The Sea의 음율이 계속 떠올랐던 나. 확실히 우리 문화에 서양의 영향력이 크긴 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 마치 꿈 속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듯한 용궁의 묘사가 워낙 뛰어나고 멋지며 상상력을 자극했다. 또한, 용왕도 인정할 만한 문장력으로 자신을 피력하는 꿈 속에 비해, 현실로 돌아와서는 세상을 등지는 모습은 당시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세상이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김시습의 실제 불만을 표출했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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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체적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게 재탄생된 책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의 의도와 기획은 그 외의 다양한 부분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책이 쓰여졌던 당시의 국내, 외 시대상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또한 본문에 나온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교과서에서 지식으로 배웠던 것들과,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적 재미의 요소들을 서로 링크시키면서 재미와 학습의 양쪽 효과를 모두 노리고 있다. 또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를 배울 수 있는 코너와, 추가적으로 읽을만한 책을 소개하는 등, 전체적인 구성이 굉장히 기획적이고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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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초등학생이 고전을 읽는 방법 중 이만한 것은 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짜여진 구성의 시리즈라는 생각이다. 다만 여기서 드는 우려는 앞서 한 번 언급했던 '초등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즐거운 책읽기로서의 대처'와 '자칫 잘못하면 고전읽기를 학습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의 아슬아슬한 선 부분이다. 너무 이 책에 나오는 지식적인, 학습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을 강조하고, 또 강요하다보면 그 선을 넘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부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느껴진다. 소설은 소설로서 재미있게 읽고 그에 따라, 부대 지식이 쌓여가는 것이 훨씬 좋은 효과를 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들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고.
모쪼 록, 아름다운 우리의 고전을 어려서부터 즐겁게 읽고 또 바로 읽기 위해 만들어진 이 시리즈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책이고, 또 미래 사회를 살아갈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도록 해줘야할 의무는 바로 우리에게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경쟁력있는 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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